일상/일상다반사

약속

햇살가득한 2010. 3. 16. 13:50

셀리네는 호주에 가서 처음 내 짐을 푼 집이었다. 

안주인 셀리는 150키로 정도나 되어 지팡이에 의존하고 걸어야 하고 

허리를 굽힐 수도 없는 고도 비만이었다.

그에 반해 남편은 방금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 물을 마시러 잠깐 들어온 사람처럼 반바지에 날렵한 차림이었다.

 

 

아들 리엠은 산호 바닷속처럼 푸르고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조시는 머리핀에 관심을 보이는 여느 여자애들 같았다.   

집안이 지저분하여 일주일 살고 집을 옮겼는데 두번째 집에서 생활해 보고는 다시 셀리네 집으로 옮겨 달라고 했었다.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셀리네 집을 떠나는 걸 아주 미안해 했는데 셀리는 괜찮다며 친구를 하자고 했다. 

내가 자기네 집을 떠나기로 했는데도 처음 스케줄대로 자기네 시댁엘 데려가 주었다.

툼바 중심지에서 약 40키로 정도 되는 크로스네스트 국립공원 부근이었다.

셀리의 시어머니는 텃밭에 귤, 오렌지 등 유실수를 키우고 딸기, 오이, 호박 등을 키웠다. 

호주 사람들은 넓은 뜰에 왜 잔디만 키우고 야채를 키워먹지 않을까 궁금해 했는데 내가 본 텃밭을 가꾸는 유일한 집이었다.  

시어머니는 그 텃밭에서 난 과일로 잼을 만들었다. 우리가 간 그 덥던 날도 잼 만드는 냄새가 온 동네로 퍼져 나갈 정도였다. 

그녀의 시동생은 삼십대 후반의 나이로 노노총각(호주는 22살이면 결혼을 한댄다.) 이었다. 기름을 바르고 빗어 넘긴 머리가 트럭운전사라고 보기에는 영 안 어울렸다. 나중에 그의 방에 쌓인 책을 보고 그가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내 듣기에 문제가 있었다.     

 

셀리는 내가 귀국하기 이틀전에 저녁 초대를 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뉴타운 공원에서 다음날 있을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했다. 국화꽃을 한다발 옆에 두고.     

 

셀리 남편은 새벽 4,5시경이면 출근을 하고 부인은 하루종일 서서 세탁과 다림질을 했다.

그래도 이 부부, 얼굴하나 찡그림없이 맘 편하게 잘 산다. 

어느 날인가 출근하는 남편과 주방에서 키스를 하는데 그 감미로움이 내게도 전달되었다. 

남들은 한 달간 휴가기간이라 차 뒤에 캠핑카를 싣고 떠나더만 셀리네는 여전히 남편은 차량 고치는 일로 부인은 세탁일로 분주했다.

거기다가 나까지 하숙을 치는데는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타향살이에 먹을거를 잘 챙겨주자는 생각에서인지 여러가지를 냉장고에 쟁여놓고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식탁위에 물컵을 내려 놓았더니 딸 조시가 긁힌다며 잽싸게 컵받침으로 받쳤다. 

새로 산 식탁이라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내 방에 있던 쓸 수 없었던 장농은 100년이 넘은 것이었다.     

식탁을 애지중지 아끼는 걸 보고는 귀국하면 식탁매트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식사를 할 때 큰 접시하나에 소세지나 고기, 삶은 감자, 당근, 콩을 담고 

우유나 요플레가 담긴 컵 하나, 포크, 나이프가 전부인 그릇을 보고

우리나라 여자들은 주방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지 비교가 되었다.

설거지 할 것도 기껏해야 접시와 컵, 포크가 전부이니 아이들도 시키기도 좋겠다. (공부만을 강요한 나머지 설거지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한국 아이들) 

귀국하여 바쁜 일과 속에 재봉 만질 일은 멀기만 하고,

약속 안 지킨다고 나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을 싸잡아 나쁜 인식을 할 것 같아 약간 조바심이 났다. 

몸이 어느정도 회복될 무렵 천을 꺼냈다.

 

 

 

동대문 시장에 천을 사러 가면 천이 예뻐서 이것저것 사기도 하는데 셀리네 매트를 만들고 보니.

식탁 앞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던 애니타 아주머니도 생각나 하트 모양도 만들고 

 

꽃무늬가 이뻐 자꾸 들여다 보다가 수선화를 들고 멀리 평택에서부터 병문안을 와 준 은숙 샘 줄 가방도 만들었다. 

봄바람 불어 큰 카메라를 들고 사진찍으러 나갈 때 소품을 담을 꽃무늬 가방이었다. 

셀리에게 편지를 쓰다가 셀리 시동생 생각도 났다.

새 집을 지어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을 시동생에게 내가 새 집을 갖는 것마냥 들떠 새집 축하의 의미로 다시 가위를 들었다. 

머릿속으로 궁리를 하고 천에 자를 대고 긋기까지도 일이 시작된 건 아니다.

가위로 재단을 하고서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dear friend 라며 이메일을 보내온 셀리에게 우체국으로 택배를 부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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