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스승의 날이었다.
사실 스승의 날이라는 게 일년에 한 번 챙기는 미역국 먹는 생일보다도 못한 건지 기다려 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조심스러운 날로 변질되었으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스승의 날 전날, 그러니까 14일 학부모님 두 분이 찾아 왔었다. 전화 상담 약속이 있었는데 그 분들인가 하고 교실로 가 봤더니 쇼핑백에 포장한 선물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차를 사오셨다고 했다. 아이구, 이런. 내가 목 풀려고 아침마다 보이차를 우려 마시는 걸 아이들이 보고 집에 가서 얘기를 했나. 서로 민망해 하면서 결국엔 선물을 다시 들고 가셨다. 받기 시작하면 다 받아 줘야 할 거 같아서였다.
어제.
교실로 들어서니 아이들이 장미꽃도 한 송이 가져오고, 카랑코에 화분도 가져오고, 어떤 아이는 카네이션 볼펜을 3개 내밀며 한 개를 고르라고 하였다. 이모가 만들었댄다. 나는 분홍, 진분홍, 약간 갈색깔이 나는 분홍빛 중에서 진분홍을 하나 골랐다. 웃는 게 예쁜 아이는 자기 용돈을 모아 직접 고른거라며 길쭉한 것을 내민다. 선물은 안 받기로 했는데... 그러나 용돈을 모아 샀다는 데 어떻게 안 받을 수가 있을까. 비싼 선물이 아니길 바라면서. 어떤 아이는 엄마가 보냈다며 쇼핑백을 건넸다. 보아하니 샤워용 비누인 것 같아서 고맙다며 받았다.
이어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오더니 편지를 하나씩 건네고 간다. 몇달 새 아이들은 부쩍 자라서 제법 고학년 티가 났다. 내 책상 주변에 몰려 있던 아이들은 쌓여가는 편지와 꽃에 자기들 선물인양 들떠있고, "선생님, 좋으시죠?"하며 몇 번이고 되묻는 아이도 있었다.
스승의 날 전날, 아이들에게 선물 가져오지 말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말았다. 꼭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선물을 꼭 가져오라는 말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을것 같았고 나는 기본적으로 선물을 주고 받는 것 또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수업시간 공책에 쓰는 것보다는 나름 잘 쓰겠다고 꼭꼭 눌러 쓴 아이들의 편지, 꼭 말 안 듣던 녀석들이 죄송하다는 편지, 그리고 작년에 속을 많이 썩혔던 아이들과 종업식 때 결국엔 끌어 안고 눈물을 보였던 아이도 편지를 들고 왔다. 그 때 내가 자기를 많이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나. 나도 코끝이 시큰했다. 내 새끼들(우리 반) 챙기느라 같은 층에서 생활하는 작년 아이들을 챙기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이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꼭 하는 걸로 봐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구나 생각한다.
스승의 날의 선물은 조용히 수업 잘 하는 거라고 했더니 순간 조용해 지더니, 잠깐 몇 분. 화장실엘 다녀오니 그 새 일어나서 돌아 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그래. 너희들은 아이들이고 내가 뭔 얘기를 하면 상상력에, 또 지난 일을 기억하여 꼭 한 마디씩 붙여서 왁자지껄해서 내가 말을 안 하고 기다려줘야 하거나 한 잔소리를 하게 되지만, 이따금씩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너희의 인생 선배란다.
허리의 고무줄이 끊어져 흘러내리는 바지를 잡고 내게 오는 아이에게 핀으로 꽂아주고 고무줄을 묶어 주면 안 흘러 내린다며 팔랑거리며 뛰어가는 너희들을 보며 난 이따금씩 엄마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고마울 때는 고맙다고 표시하고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아는 아이들로 잘 자라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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