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쏠로를 아라? | |
번호 : 1144 글쓴이 : 김삿갓 |
조회 : 441 스크랩 : 0 날짜 : 2004.08.26 06:58 |
직장에서 돌아와 처진 어깨로 열쇠를 꽂으면 달려 나오는 아이들은 없고 네모난 상자에선 자기들이 짜 놓은 말만 늘어놓구 이십여년만에 통화하는 초등학교 동창 혼자 산다면 대뜸 "야! 부럽다야, 혼자서 사니 얼마냐 좋냐?" 라고 말하지만, 그래, 니들은 입술로 말하지만 난 가슴으로 듣는다. 전화를 끊을 때쯤엔 그래도 짝을 구해야 하지 않겠냐고 가진자의 충고를 흘리다가 며칠 뒤 전화를 해서는 제 남동생이랑 선을 보랜다. 누굴 아주 5일장에서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다가 발길 멎은 이에게 싸게 넘기고 싶은 물기 마른 생선쯤으로 여기나보다. 아서라. 난 그래도 살아서 제 살을 내 주는 활어이고 싶단다. 나도 아침엔 이불귀를 쉽게 걷어 내기가 싫어. 신호 두어 개 쯤은 무시하고 속력을 내 먼 거리를 출근을 해도 넌 딸린 식구가 없으니까 배부른 아무개의 주번마저 서 주라고 한다. 내가 못 하겠다면 니들은 나를 속좁은 여자라고 싸잡아 뒷얘기를 할테지. 니들은 출산 휴가라는 게 있잖아. 세 달 월급을 꼬박꼬박 받으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려 줄 수 있잖아. 아이를 낳고서도 1년동안은 육아 시간이라고 1시간 일찍 퇴근 하잖아. 또 니들이 행복에 겨운 청첩장을 내밀 때 나, 그 봉투에 몇십년 돈만 채워 주었다. 뚝배기 뚜껑이 발가락을 찧어 방을 뒹구를 때 피라도 나야 옆집이라도 부를텐데 차라리 피가 터질 것을 고대했던 심정을 니들은 알까? 설날 아침, 별로 달라질 것 없는 똑같은 날에 똑같은 밥과 반찬을 먹을 때 니들은 떡국으로 배를 채운 뒤 모여 앉아 명절 증후군을 운운했다. 손까닥하기 싫은 어느날 저녁 두 그릇 주문한 자장면이 불어 가는 걸 니들이 본적이 있느냐구? 컴이라도 망가져 수리할 사람이라도 오면 작은 남자의 신발같은 등산화를 현관에 놓아두는 걸 니들은 알까? 오늘도 그랬다. 내 일은 아니었지만 며칠을 초과근무를 하는 동료가 안타까워 약속까지 취소하고 여럿이 남았는데 일 던져 놓은 부장은 대학원 수업 가고 신참내기 둘은 집 멀다고 가 버리고, 애 엄마는 애 데리러 가야 한다고 가버리고, 결국엔 나와 담당자만 남았다. 애라도 없으면 대학원이라도 해야지원. 일요일, 누구와도 말하지 않아서 입에 곰팡이가 필 거 같은 때 니들은 영화 한 편 같이 보자고 전화 한 번 했었냐구? 내가 혼자 냉이를 찾아 밭두렁을 어슬렁거렸다고 했을 때 니들은 비웃었지. "혼자서?" 그럼 와서 같이 캘래? 불꺼진 복도를 더듬거려 걸을 때 화장실에 빠져 죽은 귀신이 신발장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달겨들 것 같아 신발도 못 갈아 신고 슬리퍼를 끌고 퇴근을 해도 니들에겐 마중 나와 줄 남편이 있잖아. 제발 입술로 말하지마. 니들은 가족을 가졌으면서도 쏠로의 외로움마져 아름다워보이니? 그것마저 갖고 싶은 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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