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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쏠로를 알아?

햇살가득한 2007. 2. 26. 23:31
니들이 쏠로를 아라?
번호 : 1144   글쓴이 : 김삿갓
조회 : 441   스크랩 : 0   날짜 : 2004.08.26 06:58
직장에서 돌아와 처진 어깨로 열쇠를 꽂으면
달려 나오는 아이들은 없고
네모난 상자에선 자기들이 짜 놓은 말만 늘어놓구

이십여년만에 통화하는 초등학교 동창
혼자 산다면 대뜸
"야! 부럽다야, 혼자서 사니 얼마냐 좋냐?"
라고 말하지만,
그래,
니들은 입술로 말하지만
난 가슴으로 듣는다.

전화를 끊을 때쯤엔
그래도 짝을 구해야 하지 않겠냐고 가진자의 충고를 흘리다가
며칠 뒤 전화를 해서는
제 남동생이랑 선을 보랜다.

누굴 아주
5일장에서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다가
발길 멎은 이에게 싸게 넘기고 싶은
물기 마른 생선쯤으로 여기나보다.

아서라.
난 그래도 살아서 제 살을 내 주는
활어이고 싶단다.

나도 아침엔 이불귀를 쉽게 걷어 내기가 싫어.
신호 두어 개 쯤은 무시하고 속력을 내 먼 거리를 출근을 해도
넌 딸린 식구가 없으니까
배부른 아무개의 주번마저 서 주라고 한다.
내가 못 하겠다면
니들은 나를 속좁은 여자라고 싸잡아 뒷얘기를 할테지.

니들은 출산 휴가라는 게 있잖아.
세 달 월급을 꼬박꼬박 받으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려 줄 수 있잖아.
아이를 낳고서도 1년동안은 육아 시간이라고 1시간 일찍 퇴근 하잖아.

또 니들이 행복에 겨운 청첩장을 내밀 때
나, 그 봉투에 몇십년 돈만 채워 주었다.

뚝배기 뚜껑이 발가락을 찧어 방을 뒹구를 때
피라도 나야 옆집이라도 부를텐데
차라리 피가 터질 것을 고대했던 심정을 니들은 알까?

설날 아침,
별로 달라질 것 없는 똑같은 날에
똑같은 밥과 반찬을 먹을 때
니들은 떡국으로 배를 채운 뒤 모여 앉아
명절 증후군을 운운했다.

손까닥하기 싫은 어느날 저녁
두 그릇 주문한 자장면이 불어 가는 걸 니들이 본적이 있느냐구?

컴이라도 망가져 수리할 사람이라도 오면
작은 남자의 신발같은 등산화를 현관에 놓아두는 걸 니들은 알까?

오늘도 그랬다.
내 일은 아니었지만
며칠을 초과근무를 하는 동료가 안타까워 약속까지 취소하고 여럿이 남았는데
일 던져 놓은 부장은 대학원 수업 가고
신참내기 둘은 집 멀다고 가 버리고,
애 엄마는 애 데리러 가야 한다고 가버리고,
결국엔 나와 담당자만 남았다.
애라도 없으면 대학원이라도 해야지원.

일요일, 누구와도 말하지 않아서 입에 곰팡이가 필 거 같은 때
니들은 영화 한 편 같이 보자고 전화 한 번 했었냐구?

내가 혼자 냉이를 찾아 밭두렁을 어슬렁거렸다고 했을 때
니들은 비웃었지.
"혼자서?"
그럼 와서 같이 캘래?

불꺼진 복도를 더듬거려 걸을 때
화장실에 빠져 죽은 귀신이 신발장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달겨들 것 같아
신발도 못 갈아 신고 슬리퍼를 끌고 퇴근을 해도
니들에겐 마중 나와 줄 남편이 있잖아.

제발 입술로 말하지마.
니들은 가족을 가졌으면서도
쏠로의 외로움마져 아름다워보이니?
그것마저 갖고 싶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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