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살 떨어내기

햇살가득한 2007. 2. 27. 21:44
 
 

퇴근이다.

3주전부터 잠복하고 있던 감기 기운이 열을 내며 본색을 드러낸 건 오전부터였다.

그래서 퇴근하면서 보건소에 들러 독감 예방을 맞으러 갔으나 더 있다 오랜다.

헛탕을 치고 차를 돌리는데 고소한 깨 냄새가 난다. 

길옆에서 들깨를 털고 있다.

차 창문을 얼른 내려 들깨 냄새를 모아 담고는 다시 창문을 올려 냄새를 가둬버렸다.

고소한 냄새가 차 안 가득하다.

 

집에는 들르지도 않고 동네 성당 뒷산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감기가 더 심해질지도 모르겠지만 감기 기운이 땀으로 다 배출되길 기대하며.  

                                    

                                (성당에서 내려다 본 노을)

 

 

마음이 조급하다.

조만간 해는 산등성이 소나무 가시에 찔려 붉은 내장을 쏟아 놓은 채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오늘을 마감하기 싫어 늑장이라도 부리는 듯, 잠시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해.

 

 

해가 지고 나면 찾아 오는 음습함.

 

그 기운이 싫어 한 걸음도 쉬지 않고 산을 오른다.

처음엔 발목이 당겼다.

종아리가 당기고 허벅지가 그리고는 엉덩이가 당기더니

허리 옆 살들이 마구 당긴다.

이놈들 떨어져라.

허리 옆살들은 벼랑에 매달린 자일 타는 풋내기 산꾼처럼

그렇게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며칠전 성당에서는 산책로를 더 넓혀 놓았다.

사이비 크리스챤인 나는 산책로라고 하지만 실은 십자가의 길이었다.

묵주를 돌리며 성스럽게 올라야할 넓혀진 길을 보고

육중한 거미처럼 생긴 OFF ROAD 차를 타고 거칠게 달려 봤음 하는 생각이 든다.

 

 

밤이오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비탈진 곳에선 내 발에 차인 돌멩이가 덩달아 따라 구르고

제 새끼들을 불러 모으느라 어미 새는 꺼억꺼억 울고 있다.

생명 다한 가랑잎도 핑그르르 떨어져 내리고

철길 침목으로 놓은 계단을 나도 서둘러 통통통 뛰어 내려간다


 

 

일제시대 때 지어 세월을 느끼게 하는 성당 건물은 이젠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전에 중학생 애들이랑 다락방에 올라가 기도를 하고 내려온 방이기도 하다.

 

 

시내에 들러 광동 쌍화탕을 6병 사고 알약도 1개를 샀다.

그리고 내 터를 마련하면 1순위로 심을 감나무, 그 감도 한 봉지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누우렇게 달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일단 감을 세개를 까 먹고 저녁을 먹은 뒤

배를 얇게 썰어 생강을 넣고 팍팍 끓인다.

꿀을 넣고 두 컵을 마신뒤 일찍 잠이 든다.

허리 옆 살과 함께 떨어 내고픈 또 하나의 감기다.

'일상 >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구속하는 것은  (0) 2007.02.27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0) 2007.02.27
딸기를 옮겨 심다가  (0) 2007.02.27
쪽파를 다듬다가  (0) 2007.02.27
우리집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다.  (0) 2007.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