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등산을 할 양으로 계란 몇 알에 통조림 한 개를 싸서 동네 산엘 올랐습니다.
처음 생각했던 거와는 다르게 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샛길로 빠지는 나는
김밥을 사지 않은 걸 아쉬워 하며 점심은 집에 돌아와 먹기로 했답니다.
계속 실어 나르는 절의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콘크리트를 벗어나 흙길을 걸으니
자세히 볼 때마다 감탄하고 마는 자연물의 무늬와 색깔에
온갖 패션쇼의 무늬가 결국은 자연에서 나왔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입니다.
두 아름이나 될 듯한 소나무는 세월의 더께를 그 껍질로 보여주며
자기 편한 곳으로 가지를 뻗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연으로 나가면 늘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는 나는
김밥을 사 오지 않을 걸 다행으로 여기며
공양의 긴 줄에 합세를 해서 비빔밥과 석가님의 생신이시기에 미역국을 하나 받아서
장독 항아리를 식탁 삼아
저 앞에 푸르게 펼쳐진 능선을 정원 삼아
밥을 맛있게 비볐습니다.

부끄러운 소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듯 철쭉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뭉뚱그려 지은 벌레의 집에서도 생존의 질서가 느껴집니다. (이거 벌레집 진짜 맞나요?)

올 봄 철쭉은 원 없이 보았다고 할 만큼 지천으로 피어 있어서 1년동안 철쭉에 대한
여운이 남아 있을 듯 하네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진흙 속에서도 깨끗한 꽃을 피워내는 연꽃이 최근에 좋아져
작은 연등을 두 개나 샀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배 둘레에 진을 치고 있는 쿠션을 떨어 버리리라 다짐하며
조용한 석가 탄신일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