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베란다에 넣어둬 먼지가 낀 자전거를 꺼냈습니다.
똥싼바지 같은 자전거 바지를 입고
장갑을 끼고
헬멧을 쓰고
눈에 잘 띄라고 분홍색 잠바를 입고
도로를 따라 갑니다.
늘 자가용 차에 앉아 내다봐 휙휙 지나가버렸던 길가 언저리 것들.
자전거로 속도를 낮추고 보니 보이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고무 타이어 안에서 생명을 키우고 있는 앙증맞은 은행나무.
콘크리트를 비집고 나온 노란 민들레.
엠프 소리가 나서 들러 본 곳은 대학교 축제 행사장이네요.
공대쪽은 축제도 뻑적지근하게 하는데
여긴 교대답게 남자 학생들이 귀여운 푸우 곰처럼 율동을 하고 서로 기차를 만들며 돌아가고 있어요.
바람을 가르는 건 신나는 일이예요.
비켜주지 않으려는 듯 오르막길에서는 근육이 뻐지근하게 페달을 밟아도 나아가지 않는데
내려오는 길은 바람이 빠른 속도로 비켜주거든요.
어렸을 때 읽은 동화 "비밀의 화원"이 생각나는 집을 발견했어요.
창문에서는 소녀의 울음 소리가 들릴 듯도 하지만
오늘은 어스름 저녁이 깔려서
내일 좀 일찍 비밀의 화원엘 들러 볼래요.
수풀이 우거지고 저 안쪽으로 길이 나 있는 곳에
소녀는 없더라도 차 한잔 건네줄 따듯한 이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자전거를 타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괜히 똥폼도 잡아 보고
새록새록 용기가 생겨나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