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피부에 얼굴이 통통한 여자 선생님.
선생님께는 우리들 또래의 여자 아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는 콧물이 왜 그리도 잘 났는지.
소매가 반들반들 닳도록 코를 문질러 댔고.
선생님은 한 명 한 명 불러 책상위에 머리를 대라고 하고는 귀지를 파 줬던 기억이 난다.
행사 때면 온 동네 잔치를 벌여 학교에 오신 부모님들.
30여년이 지나 높은터로 모인 우리들 모습에는 그 때 학교에 오셨던 부모의 모습이 재연되듯 오버랩된다.
용구새끼, 깝데기 새꺄,
부르는 호칭에서 새끼도 이름의 일부처럼 편안한 느낌이 드는 건
아무래도 홀라당 벗고 멱감던 어린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누님같은 꽃이 국화라고 했던가.
이제는 자기 자리를 찾아 길이 들어 편안해진 모습으로 만난 우리들은
넓은 아량을 가진 모란꽃 같은 이미지가 난다.
태준이는 인삼을 발견하고 지 아들 챙기는 걸 보니 너도 영락 없는 가시고기구나.
그래,
우리 부모가 제 살을 내어줘 우리를 키웠듯
삼십년 후 우리 아이들도 우리의 모습을 닮은 모습으로 저런 포즈를 취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