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에 상업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학교에 타자실이 하나뿐인지라
고 2가 되어서야 일주일에 한 번 타자실에 갈 수 있었지요.
1학년 때는 모조 타자기를 연습했는데
스폰지를 층층이 계단식으로 쌓아서 단추를 꿰매 글쇠을 만든 모조타자기가
학교앞 문방구 처마 끝에 매달려 돌아가고 있었지요.
두 학년 위인 언니는 박스를 계단식으로 붙이고 또 작게 오려서 단추대신 글쇠를 만들어 줬어요.
타자기의 모조 타자기의 또 모조 타자기가 되는 셈이랄까요.
모조타자기는 기본이요, 진짜 타자기를 사서 실전 연습을 하는 아이도 있는데
난 세상에 하나뿐인 그 누런 종이상자 타자기를 꺼내놓고 연습을 하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그런데요.
타자기 있다고 들고 다니며 자습시간이면
다다다다
쳐대던 그 친구들 보다
급수는 내가 더 먼저 땄지요.
이후로 난 타이피스트로 첫 직장을 다녔고
삼보 컴퓨터에서 기껏해야 사칙연산 정도만 되는 컴퓨터를 접했고
그리고 지금은
타자기 보다도 작고 가벼운 노트북을
다다다다
쳐 대고 있습니다.
지난주말
25년만에 이사를 하는 오빠네 집 다락방에서
언제 어떻게 흘러 들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타자기를 대하였습니다.
종이를 끼우고 여전히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태아짓마냥 습관적으로 쳐대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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