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격세지감

햇살가득한 2007. 5. 22. 23:10

사립에 상업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학교에 타자실이 하나뿐인지라

고 2가 되어서야 일주일에 한 번 타자실에 갈 수 있었지요.

1학년 때는 모조 타자기를 연습했는데

스폰지를 층층이 계단식으로 쌓아서 단추를 꿰매 글쇠을 만든 모조타자기가

학교앞 문방구 처마 끝에 매달려 돌아가고 있었지요.

두 학년 위인 언니는 박스를 계단식으로 붙이고 또 작게 오려서 단추대신 글쇠를 만들어 줬어요.

타자기의 모조 타자기의  또 모조 타자기가 되는 셈이랄까요.

모조타자기는 기본이요, 진짜 타자기를 사서 실전 연습을 하는 아이도 있는데

난 세상에 하나뿐인 그 누런 종이상자 타자기를 꺼내놓고 연습을 하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그런데요.

타자기 있다고 들고 다니며 자습시간이면

다다다다

쳐대던 그 친구들 보다

급수는 내가 더 먼저 땄지요. 

 

이후로 난 타이피스트로 첫 직장을 다녔고

삼보 컴퓨터에서 기껏해야 사칙연산 정도만 되는 컴퓨터를 접했고

그리고 지금은

타자기 보다도 작고 가벼운 노트북을

다다다다

쳐 대고 있습니다.

 

 

지난주말

25년만에 이사를 하는 오빠네 집 다락방에서

언제 어떻게 흘러 들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타자기를 대하였습니다.

종이를 끼우고 여전히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태아짓마냥 습관적으로 쳐대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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