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바지를 까 내리고 앉아 있으면
손바닥 뒤집듯 변덕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저쪽 벽 너머의 사람들이 궁금해 지기도 한다.
기껏해야 50 센치미터를 사이에 두고...
그 50센치미터의 거리가 너무 길게 느껴진 건 내게 1년하도고 몇 개월이 흐른 요즈음에 이르러서이다.
언제부터 붓글씨로 "가훈 씁니다"는 글이 화선지에 주름 하나 안 생기고 우편함 옆에 붙어 있는지는 모른다. 단지 나는 그것을 보면서 이 아파트에 붓글씨를 쓰시는 분이 있구나 하면서 언젠간 필요할때 부탁을 하리라 생각해 뒀다.
그리고 새로 이사갈 집에 문패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그 붓글씨의 주인공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파트 동마다 다 돌면서 그 글귀가 붙어 있는가 살펴봤더니 우리 동 출입구에만 붙어 있는 거였다.
3층의 반장 아주머니한테 갔더니 그 분은 바로 우리 옆집이었다.
이러저러 해서 붓글씨를 부탁드린다고 했더니
사모님은 선생님의 화려한 경력을 늘어 놓으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옆에서 좀 배워 두는 건데.'
오늘 그 붓글씨를 받았다.
난 뭐 드릴 게 없어서 마침 플로라한테서 온 '비파' 몇 알을 그릇에 담아 드렸다.
사모님은 내 살림을 얼핏 보시더니 애들이 없냐고 물으신다.
1년이 넘게 벽을 사이에 두고 살았지만 이제사 진정으로 이웃간에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오르내리면서 마주칠 때 인사를 드렸고 이사 한 지 얼마 안 되어 음식을 갖다 드린 적이 있었다.
참, 마늘이 떨어져서 슈퍼에 갔다가 허탕치며 돌아오는 길에 화단에서 마늘 까고 계시는 데서 한 통 얻은적이 있었다. 이후로 난 간편 미역을 한 봉지 드렸었고.
그러나 그것은 그냥 음식일 뿐이었다.
오늘 사모님은 밥은 해 먹냐고 물으셨고 혼자 밥 사 먹기 멋적어서 꼬박꼬박 해 먹는다고 했다.
한발짝 거리도 안되는 현관문을 열고 상추를 한웅큼 갖다 주셨다.
혼자 산다는 게 알려지는 게 무서워 이웃과 소통을 안 하고 지냈던 나.
학교에서 우유가 남으면 종종 아이가 셋이나 있는 반장네 갖다 주지만 그 아줌마도 남편이 외국 출장 중일거라고 생각할거다.
나무에 비해서 글씨가 커서 축소 복사를 해서 붙여 새길까 하다가 마음이 앞서 그냥 붙였다.
붙여 놓고 보니 역시 글자가 커서 복사기에 나무판을 올려놓고 복사를 해야 할 판이다.
벽 하나의 거리는 닫혀진 마음의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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