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때가 되면 몇몇 교수님을 모시고 종강모임을 하였다.
"치마를 틀어 쥔 것처럼 서로서로 꼭 잡고 휴학하지 말고 같이 갑시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루에 몇 번 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던 시골에서 자란 나는
시내에 가는 일이 일 년에 고작 몇 번 밖에 되지 않았다.
사람이 벅적대는 장날에 엄마를 따라 가면 그 많은 사람들 인파에
엄마를 놓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엄마 치마를 잡고 졸졸 따라 다녔는데
머리에 뭔가를 이고 휑하니 걸어가는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면 치마를 잡아서 한 번 틀어 쥐어야 놓치지 않았다.
오늘 대학원 졸업식이 있었다.
가장 추울 때와 가장 더울 때, 그래서 좀 쉬라고 방학이라는 걸 하는 시기에 난 학생으로 돌아갔다.
새 학기 개강 할 때마다 휴학을 해 버릴까 하는 갈등을 내내 겪으며
그래도 남들 할 때 같이 해야 졸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치마를 틀어 쥔 것처럼'
동료들 치마를 틀어 쥐고 결국은 석사모를 쓰게 되었다.
파 냄새가 배인 후라이드 치킨 '파닭'도 기억할 것이다.
극한 계절에만 밟게 되는 교정.
동글동글하게 이발한 듯한 반송.
늪에서 울던 맹꽁이 소리.
논문 쓰느라 새벽 4시까지 따끔따끔한 눈으로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던 많은 날들.
고속도로를 지나치며 보았던 풍경들.
커서가 깜박이는데 글자 하나 입력 하느라 몇 시간을 고뇌했던 무더웠던 여름날.
이런 모든 것들이 가운과 학위서를 받으며 감회가 새로워진다.
논문이 통과되어 내 이름이 박혀 나온 논문을 보면서도 물론 감격스러웠다.
공부를 더 하게 될 지는 모르겠다.
논문이 통과되면서 더 이상의 지긋지긋한 공부는 없다고 했지만
산모가 첫 아이를 낳고 그 고통을 잊을때 쯤이면 두번째 아이를 낳는다고 하듯
논문쓰는 고통을 잊을 때 쯤이면 박사과정 요강을 뒤적거려 보는 수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난 치마를 틀어쥐는 각오로 과정을 마쳤고
이젠 틀어쥐었던 손으로 나를 위해 축배의 잔을 따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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