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때가 너무 빨리 온 것 같으이

햇살가득한 2008. 3. 1. 21:14

박범신?

아니지. 여잔데. 나이 마흔에 등단하고...

박?

박?

...

박완서.

그래. 박완서!

글쓰는 첫머리부터 막힌다.

박완서님은 며느리를 고를 때 우산을 열 번쯤은 잃어버린 사람을 고르겠다고 했다.

자로 잰 듯 너무 꼼꼼한 것 보다는 좀 여유있는 사람을 고르겠다는 생각이었을텐데,

최근 내가 하는 일을 곰곰히 살펴보면 며느리 열두 번도 더 하게 생겼다.

아니, 어쩜 건망증이랑 좀 헐렁한 거랑은 차원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며칠전

엄마가 친구집에 다녀오셨는데 엄마 가방에서 친구네 리모콘이 나왔다.

"얘, 이게 왜 내 가방에 들어있재?"

리모콘을 냉장고에 넣었다는 아줌마,

심지어는 밥솥에 넣었다는 아줌마도 생기는데

엄마는 친구네 집에서 가방에서 뭘 찾다가 들어 있는 거를 죄다 꺼내 놓고 담다가 리모콘도 덩달아 집어 넣고 오신거였다.

이제 곧 팔순이 되는 어머니는 그렇다고 치자.

난 그 반을 살았는데도

외출할 때 현관문을 잠그고 출발하기까지는 10여분이 족히 걸리는 듯 하다.

뭘 안가져와서 열쇠를 열고 다시 들어가 확인해 보면 없어서

다시 차 안을 찾아보고

그래도 없으면 다시 집에 들어가 찾아보고

어떤 때는 손에 가방을 든 채로 뭘 놓고 와서 문 열고 가지러 들어 갔다가

잊고 온 걸 가지고 현관문을 잠그고 차에 올랐는데

이번엔 가지러 갈 때 들고 있던 가방을 놓고 나오질 않나.

어제도 먼저 직장에 송별회가 있어 갔다가

교실에서 프린트를 하고는 usb 카드를 놓고 왔다.

다시 그 학교에 갈 일도 없는데... 그것도 먼 거리를

그걸 놓고 온 줄도 몰랐다.

오늘은 새 직장으로 가서 프린트를 하려고 열쇠꾸러미를 뒤져보니 usb 카드가 안 매달려 있는 걸 보고 알았다. 

거기에 환경정리 할 것 다 담아 뒀는데...

오늘 가서 다시 다운 받고 수정하고...

나이 50이면 좀 덜 억울하겠다.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이거 너무 때가 빨리 찾아 온 건 아닌지...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아직까지 우산을 잃어버리고 산 사람이 아니었는데...

 

40대분들, 증상 좀 알려 주세요.

제가 좀 심한 건가요?

아님, 님들도 그러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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