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연세까지 일을 하시더니 작은 교통사고가 난 이후로 일을 그만 두셨습니다. 그동안 친구들과 모여서 국수도 삶아 드시고 하시더니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을 따라서 약장사 구경을 다니시더군요. 바로 코앞에 노인복지센타가 있는데 거기나 가보시라고 해도 젊은 사람만 있다며 친구들과 약장사 구경쪽으로 기울어지셨습니다. 약장사라면 일단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나. 노인네들께 춤과 음악으로 분위기 띄워놓고 과거에 없이 살았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공감대를 형성한 뒤 물건들을 판매 한답니다. 물건을 산 사람한테는 명찰을 붙여줘서 (꼭 어린애들 뭐 한가지 잘하면 종이 메달 걸어 주면 좋아하듯) 산 사람과 안 산 사람의 구분을 지워주면 안 산 사람은 미안함에 사게 되고...
과일 칼을 처음 사 오셨지요. 그러다가 얼린 중국산 마늘 중국산 갈치... 폐계 닭.. 뭐 엄마는 얻어 오셨다는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덤으로 주는 것, 좋은 게 어디 있나요?
오늘 집에 와 봤더니 흑염소 엑기스 3상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뭐, 저를 주려고 사셨다네요. 그간 뭐 해 준게 없다고.. (여기서 나의 불효가 드러납니다. 해준 게 없어서 좀 해줄랬더니 부모의 성의도 모른다고. 아, 우찌 엄마가 이리 됐을까? 엄마 내가 해주는 게 싫대? 단지 믿을만한 걸 먹자고요.)
전 애초에 약장사한테 사오면 안 먹겠다고 엄포를 놓았었는데 이젠 물어보지도 않고 사오신겁니다. 따뜻하게 자겠다고 보일러 틀면 어느새 꺼버리는 분이...
믿을만한 물건을 구해서 먹자는 게 제 소신이거든요. 엄마랑 한참 싫은 소리가 오갔는데 엄마 삐져서 방에 들어가 계십니다.
과도용 칼에서 시작한게 불과 며칠 사이에 흑염소까지. 딸 셋을 위해 챙기셨는데 까탈스런 내가 안먹는다고 할까봐서 내 몫은 엄마몫으로 바꿔치기 할 생각까지 하시고.
뭐, 엄마의 은공도 모르는 못된 딸년이 되더라도 몸에 좋다고 십만원짜리 팬티를 사오는 경우가 생길지 몰라 좀 서운하더라도 싫은 소릴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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