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차
- 글쓴이: 김삿갓
- 조회수 : 79
- 03.01.10 19:14

무소유로 살고 싶지만 나도 속인인지라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을 갖춰 살려하는데 자전거라는 짐이 하나 더 늘었다. 요즘엔 일 때문에 자주 경기도와 대구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챙겨 갖고 온다고 했는데 꼭 아쉬운 것이 있게 마련이다. 자전거만 해도 그렇다. 지난 번 파주 언니네 집에서 보름가량을 방바닥을 긁다보니 자전거 생각이 간절하여 이번엔 동대구역에서 문산으로 자전거를 부쳤다. 그 자전거를 오늘 문산에서 찾아서 헬맷을 눌러 쓰고는 임진각 자유의 다리를 건넜다. 매스컴의 현란하고 눈물 자아내는 남북 분단의 문구를 들어서인지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음식을 까탈스럽게 가려 먹지는 않지만 기름에 절은 냄새가 나는 어묵을 먹으며 도대체 유통 기한이 얼마나 지났을까 생각했다.아주머니를 불러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상한 음식 먹었다고 생각하면 배탈이 날 것 같아, 괜찮다고 마음을 다지며 일어섰다. 지도를 펴 반구정 가는 길을 물으니 아주머니는 찻길이 위험하다며 농로를 일러준다. 자전거를 돌려 반구정으로 향한다. 반구정(伴鷗亭)은 방촌 황희(黃喜 1363∼1452)선생께서 관 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우리 나라 해안선이나 남북 경계선 가운데 경치가 좋은 곳은 반드시 군인 초소가 있게 마련이다. 임진강 기슭 기암절벽에 세워진 반구정 또한 철조망이 둘러 쳐 있다. 임진강을 따라 철조망 밑에는 하얀 바탕에 빨간 줄무늬 페인트를 칠한 돌멩이 네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철조망 붙잡고 임진강을 보니 쪽배만한 얼음 덩어리가 수도 없이 떠 내려 간다. 잠깐 현깃증이 인다. 빠른 물살에 움직이는 얼음덩이가 내가 흔들려 가는 착각이 들게 한다. 버스를 타면 버스안의 나는 가만히 있는데 가로수가 휙휙 지나가는 것처럼. 얼음 덩이는 비행기 밑으로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 덩이 같기도 하다. 계단을 올라 반구정에 오르니 황희 정승이 읽던 책을 덮고 반구정에 올라 도포자락 휘날리며 임진강을 굽어 보는 것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나는 뿌옇게 흐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강 저쪽을 눈을 찡그려 초점을 모아 가며 자꾸 살펴 본다. 마을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저쪽에도 우리와 같은 초소가 있다. 저쪽에서는 망원경을 들고 이쪽에 구멍이 숭숭 난 헬맷을 쓰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평일이라 조용하기도 하고 분단의 강인 임진강을 대하고 있어 그런지 더 고즈녁하게 느껴진다. 순간 절벽 아래 강가에서 물이 출렁거리며 무슨 소리가 난다. '간첩?' 따발 총알이 날아오자 재빠르게 반구정 뒤로 돌아 뛰는 상상을 한다. 강가에 얼음덩이가 떨어져 동그랗게 파원을 만들다가 물 위로 솟아 오른다. 그것은 다른 얼음덩어리의 대열에 끼어 임진강을 흐른다. 반구정에서 내려와 문산으로 향한다. 통일로는 차량도 많고 차들이 속도를 많이 내서 기차에 싣고 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금촌까지는 어둡기 전에 도착할 거 같아 자전거를 계속 타기로 했다. 통일로는 군인용 차량 또한 많다. 모퉁이를 돌아 서는데 아직 불을 밝히지 않아도 될 훤한 대낮에 눈알을 부라리듯 불을 켜고 달려오는 군용 트럭이 있다. "두두두두...." 그 군용 트럭 뒤로 대 여섯 대의 장갑차가 뒤를 잇고 있다. 아, 장갑차!!! 효순이 미선이. 나는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장갑차를 보고 자전거를 멈추고 말았다. 목이 뻑뻑하다. 눈으로 액체가 몰려든다. 장갑차가 달려오는 길 도로를 가늠해 본다. 저 쪽이 아니라 이 쪽이었다면 나는 자전거를 끌고 도랑으로 쳐박히듯 내려가리라 생각했다. 위에 탄 군인이 손을 흔든다. 반갑다는 손을 드는 이는, 두 생명을 죽이고 양심선언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일 거라고 억지를 쓰며 나도 손을 들어 주었다. 바윗돌을 부수는 듯한 육중한 소리가 무엇이라도 삼켜 버릴 것 같은 무서운 생각에 귀가 멍멍한 채로 그대로 멈춰서 있다. 장갑차는 멀어져 가고 육중한 소리도 사라져 간다. 이어 버스들이 날렵한 소리를 내며 내 곁을 스쳐 지나 간다. 버스 소리가 날렵하고 산뜻하게 들린다는 거 처음 느껴 보는 거다. 다시 페달을 밟는다. 안전.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혹 얼굴이 까지는 사고를 낼까봐 사진을 먼저 찍고 자전거를 찾으러 갈까 생각할 정도로 사고에 대해 예민해 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언니네 집에 도착하여 헬맷을 벗으며 거울을 본다. 오늘따라 얼굴이 하얗고 이뻐 보이는 건 무사했다는 안도감이 드러난 까닭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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