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전 김천에서 산골짝 물이 찰박찰박한 곳에서 자라는 미나리를 베어왔다.
물이 골로 모여 흐르는 골짜기도 아니고 예전에 집터였을법한 돌담도 쌓여 있고 펑퍼짐한 밭에
잡목이 그늘을 만들어줘 여리여리하게 자라는 미나리였다.
미나리에 밀가루를 조금만 넣어 접착제 역할을 한 뒤 후라이팬에 부쳐 매일 먹었다.
질리지도 않는다.
오늘은 언제 샀는지 기억도 없는 골뱅이 통조림으로 미나리 골뱅이 무침으로 메뉴를 바꿨다.
소금으로 숨을 살짝 죽이고 고춧가루, 매실 효소, 식초 등으로 간을 하고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무쳤다.
군침이 돈다.
하나 집어 먹으니 사각사각 씹히며 단맛이 난다.
만나기만 하면 골뱅이 무침을 시켜 먹던 박선생은 이 시간에 뭘할까?
그새 시집 가 아이가 5학년이 된 그녀는 귀가가 늦은 남편 건 제쳐두고 애들 밥상이나 차리고 있겠지.
중학교 때 꿈은 가정선생이었지.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식단을 짜서 밥상을 차리리라.
오늘은 담백하게 먹으려고 들기름을 치지 않았으니 지방 정도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골고루 들어갔으니 한 가지 반찬이라도 괜찮을 듯 싶다.
상을 다 차리고 나서야 마늘을 안 넣을 걸 알았는데 어자피 생마늘도 없고 하여
작년 이맘때쯤 담근 마늘 식초 절임을 꺼냈다.
마주 앉을 박선생도 없고 소주도 없고하여 포도주를 한 잔 따랐다.
술잔을 기울이는 데 왜 자꾸 어제 본 취화선이 생각날까?
술 한 동이 마셔 글을 풀어 낼 수 있다면
빨간 포도주 기울여 하얀 새벽을 맞을 수 있을텐데...
그래도 분위기는 내 보겠다고 아직 완성하지 않은 하얀 소나무 밥상에
갈대 염색한 다탁보를 깔고 밥을 먹는데
이거 뭐 내가 수도승도 아니고 매일 뭐하는 짓인가 싶다.
비행기 소리로 보아 구름 깊숙히 나는 듯 가늘게 들리고 산 밑에서 컹컹 개 짓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 올 뿐.
난 마주하는 이 없이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근사한 안주를 놓고서.
일찍 대문이나 걸어 잠궈야겠다고 고무신을 신고 나갔는데
마당을 보니 어제 내린 비로 풀들이 아주 살판이 났다.
그래, 요놈들.
내가 느이들을 기다렸다.
비가 오기 전엔 땅이 말라서 풀이 끊어졌었다.
억세게 자란 놈도 아닌데 흰머리 뽑아내듯 톡톡 잡아 채었더니 손이 지나간 자리는 휑하니 잔디가 드러났다.
그래 모든 게 때가 있는겨.
새끼들과 실갱이 벌여야 할 나이에 말 못하는 풀들과 실갱이나 벌이고
홀로 앉아 밥상이나 받고 있으니.
전에는 남자가 나타나면 왜 이제 나타났냐고 구둣발로 한 방 걷어 차 줘야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엎드려 절을 하고 싶어진다. ㅎㅎㅎ
어디 있다 이제 왔수. 지금이라도 왔으니 무쟈게 반갑구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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