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나가 서면 표독스럽게도 따갑지만 선선한 바람도 불어주니 가을은 가을인가보다.
잔디를 깔고 정원을 꾸밀 것이냐,
푸성귀를 키울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하여
온갖 잡동사니 씨앗을 모아와 마당 옆에 밭을 일구었다.
봄에 상추부터 시작하여 창고 지붕 위에 올라 앉은 지금의 호박까지.
마당을 서성이며 식물 잎 들춰보는 재미에 한 해를 보냈나 싶다.
2대 심은 찰토마토는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여름 내내 따 먹고도 아직도 이렇게 이쁜 열매를 준다.
난 그저 자연에 눈길만을 더했을 뿐인데.
저녁때는 끓는 물에 넣어 껍질을 벗긴 뒤 끓여서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야겠다.
토마토의 색깔이 빨개질 수록 의사의 얼굴은 파래진다지 않던가?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자 단호박줄기는 호박 하나를 자랑삼아 달고서 이파리를 삭히고 있다.
잔뜩 주름진 얼굴에 구부정한 엄마처럼.
난 녀석들을 따서 식탁에 올려 놓고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사진도 찍는다.
강보에 싸인 아기 들여다 보는 엄마의 심정이 이럴까 싶다.
고구마는 내가 심은 건 아니다.
엄마가 심을 때 비뚤어진 비닐을 좀 펴서 덮어줬을 뿐이었다.
수확은 꼭 심고 가꾼 사람이 해야 할 것 같다.
땡볕에 고구마밭에 앉아 딱딱한 밭을 호미로 파자니 얼굴에 땀이 소낙비 내리듯 한다.
그래도 호미질 한번에 너댓개씩 딸려 나오는 놈들때문에
땀에 섞여져 흰 우유빛 같은 썬크림이 안경에 떨어져도 열심히 호미질이다.
저 크기.
비료도 거름도 안 주는 얼치기 농사꾼은
딸려 나오는 것들을 기대하며 봄, 여름을 기다림 속에서 사는가 보다.
늙은 호박은 뭐할까?
한겨울 단호박이랑 반반 섞어 찹쌀 갈아서 호박죽 쑤어 먹어야겠다.
내년 3월에 해산할 친구도 떠오른다.
친청엄마 심정으로 잘 익은 놈 하나 갖다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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