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을 찍어 본 적은 없다. 오빠네 집에 갔을 때 피아노 위에 놓여 있던 가족사진에는 호호 할머니가 된 엄마와 오빠, 올케, 조카가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을 뿐. 나는 제외되어 있었다. (이 대목 쓰다 보니 왜 눈이 축축해지는 것이여. 이리 초점을 맞춰 가려는 건 아니었는데...) 여튼 봄, 윗집 쇠똥을 수레에 끌고와 삽으로 듬뿍듬뿍 거름을 주고 씨를 묻어둔 호박이 싹이 돋고 덩굴이 번져 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호박잎을 뜯어 쪄서 밥상에 올리기도 했고 애호박을 된장에 넣고 바글바글 끓이기도 했다. 이리저리 눈길을 받던 호박들. 혹은 이파리에 가려 내 눈길 전혀 받지 못하던 호박들. 행여 서리가 앉을까 밤에는 덮어두고 낮에는 잘 익으라고 열어두길 며칠. 이제는 다 자랐을 거라며 모두 모아 가족사진을 찍는다. 이파리에 가려 눈에 띄지 않은 맨 앞줄의 하얀 분이 나는 호박. 그 기나긴 장마에 꼭지가 물러 떨어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던 오른쪽 첫번째, 두번째 호박은 든든한 맏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줄기를 뻗어 가다가 제 편한 자리에서 자리를 잡은 호박은 돌 위가 집이 되기도 했고 호박 밑으로 지렁이를 품어 주기도 했다.
박은 속을 파내고 삶아 노랗게 말려 여름에 잔치 국수를 담아 먹으려고 심었다. 가로로 자를 것인지 세로로 자를 것인지 톱을 들고 고민을 할 일이지만 시원한 잔치 국수를 말아 먹을 생각에 하얀 박꽃때부터 설레었었다.
며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미처 손이 닿지 못해 남겨둔 대추알을 바람이 마저 털어 주었다. 한 알 한 알 주워 담으며 한 겨울 진하게 대추차 끓여 마시다 쓴 맛이 나거들랑 고독이 한 스푼 들어간 것이라 여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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