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아이들을 초대하다

햇살가득한 2009. 3. 24. 19:50

토요일 4교시를 끝내면서 우리집에 가고 싶은 사람 선착순으로 4명을 받는다고 했다.

미리 얘기하면 술렁거릴 것 같아서 종례를 하면서 얘길 했더니 아이들 점심도 안 먹고 가방만 던져두고 허락을 받고는 내달려 왔다.

한 명은 헉헉대며 앞문을 열었는데

"어쩌냐, 넌 다섯 번짼데."

하는데 한 녀석이 또 들어선다. 두 놈들은 가지도 않고 내 퇴근시간까지 얼쩡거린다.

차 뒷자리에 끼여 앉으면 5명도 되겠지만 한 녀석을 떨궈버리는 것 보다 두 놈을 떼어 버리고 가는게 낫겠다 싶어 처음 약속한 대로 4명만 데리고 가기로 했다.

모란시장에 들러 쌈채소 모종을 샀더니 애들은 현장체험 가는 것 같다며 신이 났다. 

마당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올린다.

별 근사한 광경까지야 없는데 자기네 집에는 없는 마당이라는 공간때문인것 같다.

아예 살고싶다고까지 한다.

돼지고기를 사서 고추장에 양파를 썰어 넣고 양념을 했다.

한 녀석은 밥을 잘 한다기에 쌀 씻기를 시켰더니

다른 아이들도 모두 나선다.

네 명은 식탁을 옮기고 숟가락을 씻어서 상을 차리고 그릇들을 날랐다.

한쪽 옆에서는 황토구이판에 지글지글 삼겹살이 구워진다.

배고플테니 먼저 먹으라고 해도 녀석들 안 먹는다. 후후후. 도덕시간에 배운 예절을 실천하는군.

 

 

담장밑에 달래를 캐서 된장찌개를 끓였더니 알이 든 거는 머리에 좋다나. 나중엔 서로 건저 먹기에 바쁘다.

녀석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꽤나 받는가보군.

삼겹살을 싸 먹고 이젠 일을 해야지.

풀 좀 뽑으라고 했더니 녀석들 알아서 두 편으로 나눠서 경쟁하면서 풀을 뽑는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 자연스럽게 경쟁을 도입하는 아이들이 조금은 씁쓸했지만 그래도 풀이나 많이 뽑아주렴.

 

 

나는 그 사이에 텃밭 한 귀퉁이에 거름을 뿌리고 삽으로 뒤집어 고랑을 만들었다.

작년에 매실효소를 거르고 찌꺼기를 담장밑에 던져둔 것이 있어 삽으로 뒤적였더니 빨간 지렁이들이 아주 덩어리로 나온다. 지렁이는 단 것을 좋아하는가보다.

비닐을 덮고 감자를 심었다.

 

 

쌈채소도 심었다. 몇 뿌리 안 되지만 여름이 되면 10명이 한꺼번에 넉넉히 먹을 양이다.

 

 

"여름이 되면 많이 자랐을거야."

"그 때 또 놀러와도 돼요?"

"그럼. 너희들이 심은 거 쌈싸 먹어야지."

애들은 무척이나 들떠있다. 더군다나 여름엔 선풍기 없이도 시원하다니가 꼭 오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

쌈에 삼겹살 얹어 먹은 뒤 부른 배를 쓸며 거실에 여기저기 누워 낮잠을 자는 상상을 한다. 

 

 

"너희들 봄처녀 좀 돼볼래?"

아이들과 장갑을 끼고 들로 나갔다. 돗나물과 미나리를 뜯기는 아직 어리고 냉이를 캐러 가자.

냉이가 어떤건지 알려줬더니 아이들은 쉬지도 않고 캔다. 오히려 허리 아프다고 꾀를 피우는 건 어른인 나다.

애들은 드라마를 나보다 더 많이 본다. "아내의 유혹"이 아니고 "냉이의 유혹"이라나. 

날은 저물어 오는데 통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한 번 국 끓여 먹을 분량이 됐다 싶을즈음 허리를 폈다.

 

 

 

한 봉지씩 나눠줬는데 아이들 자기네들끼리 비밀을 만든다.

"우리 선생님네집에서 재밌었단 말 하지 말자. 그냥 왔다가 바로 갔다고 말해. 여름방학때 다 온다고 하면 안 되잖아. 선생님도 말하지 마세요. 네?" 

"좋아. 그 대신 월요일에 일기 다 써와. 그럼 비밀을 지켜주지."

이래서 아이들과 나는 다른 아이들한테 비밀이 생겨버렸다.

월요일 학교에 가서도 아이들은 그냥 반가운척도 안하고 그냥 데면데면하게 보낸다. 

다만 한 아이는 우리집에 오려고 동생을 따돌렸는데 들통이 나서 여름엔 동생을 데려가도 되냐고 이틀째 조르고 있다.

요놈들 아무래도 여름에 들이닥쳐서 또 얼마나 조잘대다가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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