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선착순 4명 모엿!

햇살가득한 2009. 8. 27. 21:36

여주에 심어 놓은 옥수수가 제 철이 된 것 같다.

아침 여덟시가 되기도 전에 몇몇 녀석들한테 전화를 했다.

선착순 4명이다.

할머니가 폐끼친다고 다음엔 가지 말랬다지만 텃밭에 오는 걸 좋아하는 큰 딸 같은 아이,

동생을 떼어 놓고 와서 졸지에 미운 언니가 되어버린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아이, 다음엔 동생도 데려 오렴. 좀 끼어 앉으면 되지 뭐.

외동딸로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

뭐가 부족한지 아직 파악되지 않은 아이.  

 

 

이걸로 오늘 점심거리다.  

 

콩을 까 밥에 넣을 거고,

가지는 나물로 무칠거고,

양배추와 호박잎은 쪄서 깻잎과 함께 쌈을.

오이고추는 된장에 푹 찍어 먹어야지.

간식으로는 옥수수가 제격이지.

 

 

 

어제 점심때 샐러드바에서 먹었던 오색찬란한 점심보다 훨씬 맛있다.

깻잎의 진한 향과

아삭아삭한 오이고추의 달콤함.

강요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이들도 맛있다고 한 주걱씩 더 떠 먹는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는 올 여름에 어디 다녀 온 곳이 없다했다.

잘 됐다.

물놀이나 실컷 하렴.

 

 

까르륵대며 개헤엄치는 녀석들 보니 내 새끼들 같다.

 

 

 

주인장도 없는 외딴 집.

먹구름마저 끼어 캄캄하고도 적막한 밤이다.

창문으로 누가 들여다 보는 듯하여

창문을 죄다 걸고 커튼을 꽁꽁 내려 닫고

가져간 노트북을 켜서 영화를 봤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야한 내용은 없었던 걸로 기억했기에 아이들과 세 시간동안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바꿔 가며 보았다. 

 

 

다음날.

극기 훈련 좀 시킬랬더니 녀석들 몸집 좀 봐라.

나까지 다이어트 얘기하면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

오르막길에서 "몸이 가뿐하면 힘도 들지 않아."

했더니 마른 녀석 둘. 팔랑팔랑 뛰어간다.

  

 

 

 

"이게 며느리밥풀꽃이란다."

"전에 얘기해 주셨잖아요."

"봐라. 밥풀이 두 개 달려 있잖니."

 

 

2시간 걸어서 선녀탕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올 계획이었지만

가벼운 산책으로 끝내고 계곡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캠핑 온 기분으로.

 

 

한 놈을 데리고 옥수수를 좀 더 땄는데

늦게 심은 쥐이빨 옥수수. 팝콘 만들 건데 이제 한참 꽃잎을 달고 있다.

벌들의 날갯짓에 윙윙 소리가 요란하다.

옥수수꽃 향기가 이리 달콤한 줄 몰랐다.  

 

 

"이 주 후쯤에 한 번 더 와야겠다.

그 때 되면 옥수수를 한 번 더 따야겠는걸."

농작물을 핑계로 녀석을 한 번 더 데려올 심산이다.

공부 좀 못하면 어떠냐. 지금처럼 바르게 자라 주면되지.   

"먼저 집에 도착해서 다녀왔다고 인사드리고 나한테 전화 하기다."

아이들을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는데 문자가 왔다.

오늘 행복했다고, 그리고 선생님 사랑한다고.

"나도 붙임성 있는 니가 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