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눈물의 오누이

햇살가득한 2010. 2. 12. 16:56

두번째 홈스테이.

일본 여자 애가 사는 곳으로 옮길래, 중국 남자가 사는 집으로 옮길래 하길래

중국어를 좀 써 볼겸 중국 남자애를 택하기로 했다. 

중국 남자 학생(홍빈, 대학교 영어 강사)는 내 가방을 덥썩 받아서 주인집 차에 싣고는 나를 위해 자가용 문까지 열어 준다.

새로운 집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집이 넓고 깨끗했다.

내가 살 방을 열어 보여주는데 

과장되게 아름다운 방이라고 감탄사를 터뜨리고는 짐을 풀었다. 

이사한 날 홍빈이가 왜 집을 옮겼냐고 묻는 저의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둘째날은 홍빈이와 동네 산책을 나섰다. 

sunset street 라고 일몰이 아름다운 동네였다. 

 

 

다음날 아침부터 홍빈과 나는 아침을 손수 챙겨 먹었다. 

집주인이 전날 내 준건 식빵과 쨈 한 통. 그리고 홍빈이 가져온 차. 

아침은 이렇게 먹는다고 치자. 

점심도, 저녁도 변하는 게 없었다. 

샌드위치에 까맣게 탄 닭고기를 넣어 주는가 하면 사다 놓은 빵이 없다며 점심도 안 챙겨주고.

그래서 중국 학생들 사이에는 홍빈이는 "Just bread" 라는 닉네임으로 불린다고...

(여기서 just 란 말 그대로 야채나 과일은 없는 빵에 쨈만 달랑 바른...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밥심으로 사는데. )

주말에 마켓엘 간다길래 야채와 과일 좀 사 오라 하면서 기대하고 여행 갔더니 

홍빈이가 조용히 부르더니 자기가 돈을 냈댄다. 

하숙비를 내는데 네가 왜 냈느냐고 했더니 

슬픈 표정이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어쨌든 집주인은 돈을 벌기 위해 하숙을 치는 거였고 우리에겐 식비를 아끼려고

제대로 된 밥을 해 주지 않는 거였다.

자기네는? 아, 여기서 좀 열받는다. 자기네는 일이 있다고 나가서 먹는다.

우리는 급기야는 마켓에 가서 과일을 조금씩 사다 방에 놔 두고 비타민 보충해야 한다며 먹었고 5대 영양소 챙기는 나는 단백질 생각에 치즈도 서랍에 넣고 먹었다.

(영양실조가 오는지 눈이 유난히 침침하고 얼굴도 해쓱해져 갔다.)

안주인은 내가 냉장고를 열면 어느 새 옆에 와서 서 있었고 그걸 아는 홍빈은 자기가 산 쥬스도 냉장고에 넣지 못하고 냉장고 위에 올려두고 먹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홍빈방과 내 방은 마주 보고 있는데 나중에 홍빈 방에 가보고야 

그 애가 나를 위해 자기가 쓰던 큰 방을 내게 양보 했다는 걸 알았다.  

이런 날도 있었다.

점심 도시락을 열어보니 까맣게 탄 닭고기를 식빵 사이에 넣어 놨길래

우린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준비하지 않고 학교로 갔다.

우리 둘은 이미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헝그리 피플"로 불려지고 있었고

홍빈은 가방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내게 내민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하나 남은 사과를 내게 건넨 거였다.

우리 둘은 집을 옮기기로 하였다.

나는 기껏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결정이 그렇게 나버렸다.

홍빈이는 중국에서 달랑 티셔트 두 개를 가져왔다. 

아침에 갈아입고 하나를 빨아 널고 학교에 간다. 

그래서 까만 티를 하나 사다 줬더니 좋아라 한다. 

내게 줄 것이 없다며 방에 들어 가더니 

아내가 호주 있는동안 별일없이 잘 지내다 오라고 준 노리개를 내민다.  

부인한테 받은 걸 내가 받을 수 없다니까 

무사고를 기원하면서 차에 걸어 두라나...

내일이면 각자 이사를 할 두 사람이 마치 오헨리(?)의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난다.    

 

평안이라고 쓰여진 노리개는 귀국하여 내 차에 걸어 두었다. 

홍빈은 nuna 라고 첫머리를 쓰며 이메일을 보내오곤 한다.

장춘에 산다고 중국오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한국에 놀러오면 아기자기한 한국 구경을 시켜주고 싶은 매너있는 남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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