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며칠전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어제도 나를 집에 가둬 놓더니
오늘은 나가도 된다는 듯 가늘게 내려 준다.
약속을 미리 정하면 거기에 매여 있는 게 싫어서
거의 약속을 안 하고 지내는데
그래서 한낮이 되어서야 금원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비도 오고 하니 차를 마시자고 하신다.
비에는 차도 좋지만, 부침개도 최고.
"감자전 부쳐 갈게요."
갑자기 바빠진다.
감자 꺼질을 벗기고,
무엇보다도 팔뚝 알통에 힘을 주며 갈아야 하는 강판에 감자 갈기.
음식은 무엇보다고 "색"이라고 강조하며
빨강, 주황, 초록 구색을 갖추고
간 감자에 야채를 잘 섞는다.
쓴 지 5년이 넘도록 길이 들지 못하고 자꾸 눌어 붙어서 몇 번을 내다 버리고 싶었던 스텐레스 후라이팬이
며칠전 내다버리라는 타박을 듣고는 절박한 자기의 수명을 알았는지 더는 뻣대지 않고
어제부터 눌지 않고 잘 부쳐준다.
(어제부터 감자전, 가지전, 호박전... 그리고 오늘까지 신이 나서 이것저것 자꾸 부친다.)
사람들 사이에는 몇 년이 지나야 서로 길이 들까?
기름을 많이 두르고 부쳤더니 바삭바삭하니 맛이 좋다. 역시 감자전은 뜨거웠을 때 먹는 게 제맛.
빗길에 차를 몰아 부랴부랴 취죽진여실에 도착했더니
한참을 늦었는데도 다회를 시작하지 않고 계셨다.
금원님은 차 이름을 일러주시며 설명도 해 주시건만
늘 그렇듯 그저 맛있다 라는 것만을 느낀채 넙죽넙죽 받아 마신다.
죽을때까지도 해야 하는 게 공부라지만
정연님은 사진을 찍어가며 열심히 질문하시고
산내음님은 늘 그렇듯 조용히 차를 음미하다가
툭
"이 차는 봄보다 더 맛이 좋은데요."
한다.
봄에 마신 차 맛을 지금과 비교하다니...
그럼 그 때 차 맛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뜻?
고수일세.
며칠전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횟집의 남자는
회를 일정한 간격으로 손이 보이지 않게 써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3달을 신문을 써는 연습을 했다네.
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공부와 관심을 가졌으면 차 맛을 기억할까?
아이고,
사는 게 복잡한 나는 차 공부는 못할거 같다.
맛있는 차를 우려 주면 그냥 맛있게 먹으면 그 뿐.
그래도 이것 저것 좋은 차를 열심히 우려 준 금원님이 감사해서
향이 강한 무이암 육계와 무이암 지존 수선 이름을 열심히 외우며
향과 연결 지으며 집으로 돌아 왔으니 차 공부를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기억력 테스트쯤으로 여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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