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깔의 등산용품이 유행인데 사실 솔기가 많을 수록 옷은 불편하다.
단순한 것이 좋긴 하지만 잠시 시선이 머물 꽃잎 몇 송이도 괜찮겠다 싶었다.
중학교 가정시간에 손수건에 수 놓던 레이지데이지 스티치가 생각났다.
있는 듯 없는 듯 작고 귀엽게 수 놓기.
20년 된 배낭에 조랑말 한 마리를 데리고
꽃 두 송이의 발랄한 마음으로 안동 하회마을 구경을 간다.
나중에 전원주택을 지으면 마당 한켠에 하얀 살결에서 분홍빛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를 한 그루 심고 싶다.
병산서원의 만대루에서 뒹굴거리며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것도 싫증나면 굽어 흘러가는 강물에 온갖 상상을 얹어 함께 흘러가도 좋을 것 같다.
온갖 비바람을 맞아 기름기 빠져 부서질것만 같은 마루는 엄마의 살갗같다.
그래도 늘 꼬장꼬장하게 400년을 견딘 병산서원.
도보여행의 진수는 도시락.
멀리 여행을 가며 도시락을 쌀까 말까 망설였다.
청승맞을 수도 있지만, 음식점 찾아 기웃거리는 것도 불편하고 조용한 곳에서 호젓하게 먹는 도시락도 괜찮을 것 같았다.
버스가 하루 3번밖에 다니지 않는 병산서원.
운전기사가 알려준 2시 몇분에 맞춰 버스를 타러 나왔더니 관광 안내소직원은 하루에 3번 버스가 다닌단다.
1시간 40분을 기다려야 하는 버스.
꼬부라진 비포장길은 유혹을 하지만 폭염은 지치도록 기다려 버스를 타라고 한다.
얼마쯤 걷다가 차를 얻어 타자.
하회마을로 트럭을 얻어타고 와서 쪽배를 타고 건넌 곳.
몸의 땀구멍들이 모두 열려서 땀은 누수되는 수돗물마냥 흐르고
멋진 부용대 절벽도 그냥 절벽일 뿐,
신발, 양말을 벗어던지고 마루에 앉아 있으니 통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미처 봄이 오기 전 연둣빛 이파리가 먼저 돋아나와 스러지고 나면
분홍 꽃잎을 위해 꽃대를 올리는 상사화.
만날 수 없는 임과는 늘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다.
모델들이 걸어 나오는 무대 위로 온갖 조명이 비추며 집중하듯
햇빛은 온갖 사물이 모델인양 집요하게 비춰준다.
그 빛이 부담스러워 소나무숲으로 들어섰다.
218번 소나무 그늘로 파고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물 마셔대는 일과 흐르는 땀 닦으며 저녁때를 기다려 수상 뮤지컬을 보는 일.
여행책자 한 권을 마저 읽으리라 여기며 펼쳐 들었는데 두어 방 모기가 채혈을 하고 간다.
늙은 소나무와의 세대교체를 위하여 자라고 있는 어린 소나무들.
물 하, 돌아갈 회를 써서 하회마을이라 한다지만
삼삼오오 젊은이들은 햇빛 가리개 없이 온몸을 햇빛에 노출하면서도 재잘거리며 지나가는데
모자에 양산까지 쓰고
더위에 지치고 무릎이 아파 자꾸 쉬어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물이 돌아가듯 인생길 어디메쯤을 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