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오면 좋고 가면 더 좋은 녀석들

햇살가득한 2014. 1. 16. 23:08

그들은 바로 손주 조카놈들이다.

내게 자식이 없으니 손주가 생길 리는 없고

띠동갑인 큰언니의 딸, 내게는 조카 딸 아이가 아이를 무려 3명이나 낳았는데, 그것도 남자들만 줄줄이.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목매달이라고 자식의 수와 성별을 나누던데 내 조카는 정말 목매달이다.

세 녀석의 극성이 얼마나 심한지 쇼파에 앉아 있기라도 하면 항상 몸을 사리고 앉아야 된다. 언제 공중 점프하면서 옆구리를 치고 들어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방학을 하고 세 명의 사내 놈들에게 치여 사는 조카를 좀 구제 해 줄 양으로 파주에 갔다. 집에는 또 병든 노모가 계시니 하룻밤만 자기로 하고.

뭘할까 하다가 인형, 장난감들을 모아 인형극을 하기로 했다.

'토끼의 간'에 관한 즉흥극이었는데 의원은 상어가 하고 토끼인형은 없으니까 곰돌이가 토끼라 하고, 거북이랑 또 사람 인형은 용왕이 되고...

다음날, 조카는 3살인 막내를 일주일만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봐 주는 거야 문제 없지만 울면 큰일이다. 다행히 배가 뽈록하도록 먹는 건 아주 잘 먹는데 울면? 그래서 안 되고 6살, 10살인 녀석들을 데리고 성남으로 왔다.

첫날은 차에서 자는 녀석들을 업고 와 눕혀 재웠다.

다음날 녀석들과 무슨 놀이를 할까 하다가 낚시 놀이를 하기로 했다.

마트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놀이기구들. 그렇지만 스스로 만들면서 노는 것을 경험해 보게 하리라.

난 아이들의 정서와 손재주, 집중하는 능력 키우기 등 나름대로 교육적인 것들을 잔뜩 끌어와 도화지에 온갖 물고기를 그리도록 했다. 가위로 오리는 과정 중에 손을 쓸 것이고, 색칠을 하면서 색감도 익히고 끈기도 익힐 것이다.

그리고 보일러실에서 뒹구르고 있던 대나무 막대기를 가져와 끈을 연결하고 자석을 달아 낚싯대를 만들었다.

 

 

 

낚시하기에 앞서 항상 먼저 하려는 첫째 녀석과 늘 피해만 보는 둘째 녀석에게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를 하게 해서 순서를 정했다. 둘째라고 늘 양보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녀석들은 장판(물)에 물고기를 풀어 놓고 배라고 해야 하나 이불을 하나 깔고는 낚시질을 한다.  

 

 

 

잡은 물고기는 한 곳에 모아 담기까지 하면서.

 

 

 

늘 동생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마찰이 생기는 첫째 녀석은 동생이 낚시를 마칠때까지 잘 기다려 주었다.

 

다음은 형 차례.

 

 

다음날 저녁때는 내 방에 텐트를 쳤다. 

TV 그만 봐라, 오락하지 마라 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놀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것. 그게 어른이 할 일인것 같다. 난 요즘 아이들이 기계랑 놀고 사람대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여 배려심이 많이 부족하고 더 폭력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글씨를 제법 알아가는 둘째 녀석은 장농에 이렇게 붙여 놓았다. (휴, 매직으로 안 쓴 게 다행이다.)

 

아이들은 왕할머니, 할머니를 초대해 잠깐 한 지붕밑의 가족이 되기도 했다.

 

 

일단 내가 먼저 팽주의 시범을 보이며 진짜 보이차를 우렸더니 첫째 녀석 자기가 차 파는 사람을 한댄다.

 

 

 

 

나름 조심스럽게 차를 우려 주었고, 둘째 녀석은 맛있다며 세 잔이나 마셨다.  

 

아이들에게 위험하다고 아예 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그러나 위험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면 의외로 집중하여 조심성 있게 잘 한다. 

 

간밤에 녀석들은 차 때문에 잠이 안 온다며 설치고, 아픈 엄마는 신경질을 내고, 손주들 때문에 큰 언니는 안절부절 못하고.. 나는 둘째 녀석의 말랑말랑한 살을 껴 안고 잤다.

 

텐트에서 노는 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내 텐트가 조만간 생명을 다 할 듯하여 철수 하였다. 그 다음엔 뭘하고 놀지? 상자를 오려 칠교판을 만들어 여러 모양 만들기를 해 보자.

 

녀석들은 하룻밤을 더 자고 싶어했다. 물론 서로 싸워서 손 들고 벌도 서고, 동생을 꼬집어서 손바닥도 한 대 맞았다. 북새통으로 아랫층에 사는 사람의 항의가 들어올까봐 노심초사가 되기도 했다.

녀석들은 내가 잠시 차를 다른 자리로 이동 주차하러 간 사이에 내 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영상'앱을 깔아 놓았다. 얼마전에 큰언니 폰으로 시침 뚝 떼면서 안썼다고 하더니 25만원 요금이 나오게 하지 않나, 이번엔 즈네 엄마 폰 29만원 요금 나오게 했다나. 

 

3박 4일 북새통을 떨던 녀석들이 간다고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갔다. 조카는 세 명의 새끼들을 뒷자리에 제비새끼마냥 졸로리 앉혔다. 난 혹시라도 달리다가 문이라도 열까싶어 밖에서 못 열도록 차 문을 걸어 주었다.

혼을 빼 놓던 손주 조카 놈들이 갔다.

집이 정적이 흘렀고 집이 참 넓어 보였다.

그러나 녀석의 흔적이 진하게 남은 건 엄마 병원을 다녀와서 저녁을 먹고 난 뒤에 알았다. 

내 방에서 놀고 까불더니 문을 잠궈 놓은 거였다.

이미 늦은 저녁이라 열쇠 수리공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휴대폰은 침몰하는 배처럼 배터리가 꼬르륵 꺼져만 가고, 외출복으로 그대로 입고 그나마 엄마 방에 있던 이불에 셋이 들어가 잠을 청했다.

아씨, 그간 녀석들 때문에 못했던 일들 밤에 다 해야 하는데.

녀석들의 흔적은 오늘 12시나 돼서 나타난 열쇠수리공이 쇠문을 드릴로 부수고 새 손잡이를 달아 주고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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