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그들이 갔다

햇살가득한 2014. 6. 9. 21:04

  애들을 원래 이렇게 좋아했는지, 아니면 내 피붙이여서 그런건지. 그러고보니 애들을 원래 좋아했었다. 중 고등학교 때 조카들을 꼭 데리고 다녔고 고등학교때는 심지어 아줌마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

  아들만 세 명을 둔 조카. 늘 애들한테서 벗어나고싶어 발버둥을 치는데 육아의 올가미에서 늘 헤어나지 못하는 조카에게 회 사준다고 오라 했다.

  다섯 식구가 왔다. 10시가 넘게 도착한 조카 부부는 애들을 팽개치듯 떼어 놓고는 바닷가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아이들은 잘 마른 콩깍지의 콩이 이리 톡, 저리 톡톡 튀어가듯 세 녀석은 예측할 수 없게 이리 저리로 톡톡 튀어 다녔다. 소리는 어찌 그리도 큰지, 위 아랫집에서 항의들어 올까 걱정이 되었다. 

  체험 교육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게 지론인 나는 한 가지라도 더 아이들에게 만지고 보여주려고 새벽에 일어나 딸기밭에 데려갔는데 녀석들 딸기는 따 먹지 않고 조금만 거뭇한 게 있어도 까딸스럽게 먹지 않았다.

  주문진 바닷가에 텐트 2동을 쳤다. 집에서 해 먹을 수 없는 음식, 솔방울 위에 참숯을 올려 놓고 불을 피워 훈제 삼겹살을 해 줬다.

  다섯식구의 뒷치닥거리에 차를 몰고 집을 몇 번 들락거려 이불이며 먹거리를 날랐다.

  2인용 텐트에 녀석들과 함께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엔 나름 바다 생물 체험 시킨다고 국수 건지는 망을 가져와 성게, 불가사리, 게를 잡아 줬다. 그리고 회를 떠 와 집에 와서 먹고는 녀석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녀석들이 허물처럼 벗어 놓고 간 빨래거리들-같이 훈제 되어진 이불, 텐트, 수건 등-과 덜 마른 텐트가 살림 살기 싫은 바람난 여편네 집구석처럼 널부러져 베란다를 차지하고 조카식구보다 하루 일찍 온 엄마와 큰언니는 딸기밭을 보더니 딸기쨈을 만든다며 에구구구 허리를 펴면서도 딸기밭에 앉아 딸기를 땄다. 끝물인데다 비온뒤라 딸기는 영 상품성이 없었는데 아주머니는 양심적으로 헐하게 딸기값을 받으셨고 가방 구석 한가지쯤은 꼭 씨앗을 받아 넣는 엄마는 역시나 딸기순을 따서 챙기셨다. 뿌리를 내려 8월에 심으면 내년에나 따 먹을 딸기를. 

  하여튼 조카들의 북새통이 끝나자 언니는 딸기 쨈을 만드느라 꼬박 이틀동안 씻고 다듬고 젖기를 하였다. 

  오늘 언니가 오후 버스를 탔다고 문자를 알려 왔다. 3달 넘게 아파서 포기하고 있던 팔꿈치와 그제부터 새롭게 아프기 시작한 오른쪽 무릎 뒷쪽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은 뒤 폭탄맞은 듯한 집을 치워야겠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 현관앞에 섰다.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안 하는 언니는 역시나 번호키를 올려 놓은 상태로 집을 빠져 나갔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짠!

  깨끗하게 정리된 거실, 방. 주방.

  눈물이 날뻔했다. 식구란 이런거구나. 

  그래서 난 빨리 혼자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여기저기 아픈 몸을 덜 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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