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자기가 오늘은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윗집 형님이랑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고.
우리 넷은 술 한잔을 걸치고 남은 동동주를 안고 오면서
"저는 참 경제적이죠? 요만큼 먹고 이만큼 취하니."
라며 많지도 않은 말수가 수다스러워져 이런 저런 말들을 합니다.
넷이 차를 타고 들어오니 차 소리만으로도 반겨하며 꼬리를 흔들다 못해 엉덩이마저 좌우로 흔들던 녀석들이 둘 밖에 안 보입니다.
"부끄야, 부끄 어딨니?"
조용한 골짜기에 부끄를 부르는 소리를 여러번 했는데도 부끄는 보이지 않습니다.
'녀석 오늘은 일찍 자는가 보군.'
"여보야, 미안하다."
남편이 돌아서서 오줌을 누며 말합니다.
"니는 술만 먹으면 미안하다고 하냐? 딴 사람들은 술 먹으면 못살게 굴고 술 깨면 미안하다고 하는데."
남편은 뭐가 그리도 미안한지 꼭 껴안기까지 합니다.
"왜, 뭐가 미안한데?"
했더니 비척비척 집안으로 들어 오더니 부끄가 갔다고 말합니다.
"부끄가 갔다고? 그게 뭔 말이야? 부끄가 죽었다고?"
남편은 나를 껴안더니 부끄가 죽었다며 엉엉 웁니다.
이 남자 우는 거 처음 보는데 정말 부끄가 죽었구나, 난 믿기지 않아서 자꾸 이것 저것 캐 묻는데
남편은 자기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니가 친거야?"
물으니 대답대신
"내가 휘파람을 불면 들어오는데......"
하는 걸로 봐서 자기가 친 것은 아닌거 같습니다.
남편이 울음 중간에 띄엄띄엄 얘기하는 걸 종합해 보니
낯선 차가 들어오니까 늘 그렇듯 세 마리가 달려 나가 짖어댄 모양입니다.
낯선 사람이 오면 집 입구에서 짖어대며 차를 가로 막고
또 우리가 들어 오면 마중나와 꼬리를 흔들다못해 엉덩이마저 심하게 좌우로 흔드는 녀석들은
집에 들어 온 걸 이렇게 환영하니 빨리 차에서 내려서 자기네들도 좀 봐달라는 듯
차 옆이든, 바퀴든 상관않고 격하게 환영하는지라 개들이 피할 속도를 줘서 천천히 차를 몰고 집 마당에 세우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 말에 의하면 쓰레기 차가 왔다 갔다고 합니다.
진짜 쓰레기차가 우리 집까지 올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쓰레기를 싣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지요.
남편 말을 종합해 본 결과 낯선 사람이 차를 몰고 집앞까지 왔고 개들이 달려 나가 짖어 댔고
남편은 개들을 휘파람으로 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그 외지 차량은 부끄를 쳤고 그리고 미안하다며 갔다는 겁니다.
부끄.
부끄는 아치의 딸로 경기도 도심의 한 주택 옥상에서 자기 어미와 살았답니다.
어느날 우당탕 소리가 나서 오빠가 옥상에 올라가 보니 옥상 난간에서 떨어져 난간 끝 처마에 간신히 매달려 있더랍니다.
오빠가 손이 닿는 거리가 아니어서 올가미를 만들어 끌어 올려서 살렸는데 그 뒤로 부끄는 겁쟁이가 돼서
모든 것들을 경계의 대상으로만 보면서 자기 어미와 도시 생활을 했던 거죠.
오빠는 옥상에서 똥 싸는 걸 치우는 것도 일이고, 덥고 추운 날씨에 옥상에 있는 것도
개한테는 못할 짓이라 우리가 사는 시골로 두 마리를 데려다 놨습니다.
전 주인이 기르던 개 두 마리는 온갖 텃세를 부려대서 먹을 것도 눈치보고, 힘에 밀리고, 사람을 슬슬 피하고 거기다가 이름도 없어서 우리 집에 온 친구가 부끄러워서 사람을 안 따르는 거라며 부끄라고 이름을 지어줬지요.
그나마 내가 이뻐 해주니 기가 살아나더군요.
남편은 엉엉 울면서 말합니다.
"이제 친해진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부끄가 시골에 살면서 밝아져 트라우마가 많이 치유되어서 남편에게 마음의 문을 연 거지요.
다음에는 이런 사람 환영합니다
이런 글을 올리고 싶었는데 2까지 연속이 되네요.
며칠전에도 봉고차를 대 놓고 사람도 가득 태워와서 나물을 뜯어 가더니
어제도 차가 몇 대 들락거렸고
낯선 사람이 오면 충실하게 짖어대던 발바리 개를 치고 그냥 가버렸어요.
차는 지나가고 남편이 개를 불러도 안 오길래 나가보니 죽어 있더라고...
뭣도 모르는 강아지일때 옥상에서 떨어지며 간신히 난간에 매달려 있어서 죽을 뻔한 뒤
트라우마가 생겨서 겁쟁이였는데 시골로 데려와서 애정을 주니 많이 좋아진 개였어요.
남편은 이제 자기한테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다며.
고기 아니면 사료를 먹지 않아서 깡 마른 부끄가
어제 아침도 음식물 쓰레기를 뒤져서 사과껍질을 골라내던 부끄가 불쌍해서
우리는 서로 껴안고 목놓아 울었답니다.
윗집도 집 마당에서 차를 돌려 나가는 바람에 개가 치어 죽었다고 해요.
시골에 가면 들어가는 입구에 쇠줄 쳐 놓은 걸 보고 비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이해가 갑니다.
몸에 좋다면 다 취하고 보는 사람들.
돈이 된다면 뭐든 매달리는 사람들.
도시와 농촌의 간극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한 안타까운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