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가루를 만들 게 아니라서 된장에 찍어 먹을만큼만 4대 심은 아삭이 고추.
비료도 약도 안 준터라 구부러지고 울퉁불퉁 패여 가며 지멋대로 자란다.
10여년 전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자전거 사고가 오지게 난 적이 있었다.
왼팔은 깁스에 오른손가락은 꿰매 긴머리마저 누가 감겨줘야 했던.
엄마는 소풍 오듯 기차를 타고 멀리 대구까지 와서는 딸년 맛난 걸 해 주겠다고
푹푹 찌는 여름에 고추 튀김을 하셨다.
그리고 지금 나는 고추 튀김을 하고 있다.
밭에서 따온 손바닥보다 더 큰 아삭이 고추의 배를 갈라 씨앗을 빼내고
돼지고기 간 것에 양파, 부추, 마늘 등을 넣어 양념 하여 채워 넣고 튀김가루를 묻혀 튀겨 내는 일 말이다.
씽크대 위는 온통 밀가루 투성이에 그릇도 여러가지 나와있고 거기다가 튀김옷이 벗겨진 돼지고기에서는 물기가 나와서 기름 분수 쇼를 하듯 어수선하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살림 보다는 경제 활동이 우선이었던 엄마는 음식 또한 어설펐다.
그런 엄마가 뜨거운 여름 날 딸년을 위해 고추 튀김을 해 주시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선풍기를 엄마쪽으로 돌려 놓는 일과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 하면서 먹어 주는 일.
(엄마가 옥상에서 가꾸던 같은 종의 다알리아)
쉽게 사다 먹으면 그만인 것을 온갖 부산을 떨어가며 고추튀김을 만드는 것은
지금은 가고 없는, 엄마의 그 부산한 손길과 정성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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