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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2

햇살가득한 2005. 9. 13. 22:55
[여행관련] 가족 2 - 품위
번호 : 15284   글쓴이 : 김삿갓
조회 : 105   스크랩 : 0   날짜 : 2005.02.10 13:34
계림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따로 부칠 게 없었던 우리는 처음으로 가이드와 만났다.
패키지 여행을 싫어하지만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그냥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자고 해서 떠난 거였다.
사람들이 모이는데 스물세 명.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이 늦어진다고 여행사 직원에게 상스런 욕까지 하던 그 아저씨가 하필이면 우리랑 같은 팀일 줄이야.
거기다가 효도 관광을 오셨는지 모두들 할머니 할아버지, 좀 젊은 축이 아줌마 또래들, 그리고 조카랑 나랑은 아주 새파랗게 젊은층.
여행지 선택을 잘못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계림에 도착했고 물릴 수 없는 관광이라 즐겨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 먹으며 숙소로 향했다.
이미 중국엔 몇 번 간 적이 있었고 또 얼마 정도 살았던 적이 있어서 풍경이 색다른 건 없었다.
단지 조카를 위해 성급히 결정한 여행일 뿐이었다.
둥그스름한 산, 거인이 있어 커다란 접시를 대고 뚫은 듯 동그랗게 뚫린 바위, 어린애 머리통만한 유자, 천연동굴....
뭐 별다를 게 없었다.

그 상스런 소릴 하던 남자 하는 짓이 다 밉상이다.
졸부가 그러하듯 온갖 있는체를 하는데 면세점에서 샀다는 목도리는 몇십만원짜리 구찌요.
여행지에서 아이들을 보면 이유없이 돈을 주질 않나,
상점에 가서는 더 비싼 물건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그 사람은 맞는 옷을 입고 구찌를 둘렀어도 어떤 인격도 품위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아줌마들이 찡그린 눈빛을 보내는 걸 종종 볼 수 있었다.

6명이 온 가족이 있었다.
팔순잔치를 대신해서 큰아들, 작은 아들과 그 내외, 작은 아들의 딸 이렇게.
배가 불룩 나오고 옆으로 누워있는 남자 조각상의 배를 만지면 손주를 얻게 된다는 가이더의 말에
"요기는 만지지 마세요."
하면서 아랫부분을 손으로 가려준 둘째 아들은 유우머도 있고 깊이가 있어 보였다.
또 천연 동굴을 들어갈 때 중국인들이 걷기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가마를 타고 가라고 하니까
노모님이 싫다고 하시며 입구에서 기다리시겠다고 한다.
작은 아들은 가마를 탄 다는 것은 고려장 생각도 나고 상여도 가마로 만든 것이고
또 기력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 싫어하시는 것 같다는 거라고 부연 설명을 하신다.
물론 그 노모는 그런 얘길 한 적도 없고 단지 가마를 타면 흔들거리니까 그게 싫다고 하셨다는데.
그 6명의 가족에게는 은근히 품위가 배어 나온다.
밥을 먹을 때도 말투에서도 또 걸음걸이마저도.
무슨 직업을 갖고 있는지 자꾸 궁금해 지는데 실례가 될 것도 같아 참다가 결국엔 물어 보니
사업을 한단다.
그런데 그 사업도 장사치 정도의 그런 사업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
자기의 지나온 세월을 몸에 담는 것인데 저 가족처럼 그런 품위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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