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도 잊어버린다. 뭘 염색한지를.
천연염색한 것을 만지작거리다보면
예닐곱살 때 비오던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는 절미저축(이거 30대 이하는 모를겨)을 하여
발로 돌리는 재봉틀을 하나 들여 놓으셨다.
농사일을 할 수 없는 비오는 날에는
윗목에 자리한 발로 밟는 재봉틀 앞에 앉으셨다.
읍내에서 한복집을 하는 친척집에서 헝겊 쪼가리를 얻어 오셔서는
반들거리는 공단 천을 색색이 접어서 베갯잇을 만들곤 하셨다.
난 엄마의 발 밑에 앉아 있다가 엄마가 떨어 뜨리는 작고 예쁜 천 조각을 얻어서
동전주머니 등을 바늘로 꿰매었다.
<여자들의 마술 주머니>
<주머니에 마술 용품을 넣은 모습>
엄마는 나처럼 고집이 셌던 거 같다.
아버지 몰래 파머를 하고는 수건을 뒤집어 쓰고 며칠을 숨바꼭질 하듯 했으니.
그 중에서도 큰 고집은 엄마가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재봉틀을 사왔다는 거다.
비오는 날에는
엄마는 재봉틀에 앉아서 온갖 색색의 생활 소품들을 만들어 내셨고
쪼그맸던 나는 바구니 하나를 들고 개울건너 명수네 논두렁으로 가서 미나리를 뜯어 왔다.
엄마는 들기름을 두르고 미나리를 부쳐 주셨다.
오늘도 겨울로 달려가는 비가 쏟아졌다.
퇴근하며 쪽파를 한웅큼 사서 오징어, 당근, 홍고추를 썰어 넣고 파전을 부쳤다.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전기 후라이팬에서 부쳐서 바로 먹는데
맛이 안 난다.
전에 아무개가 느닷없이 주소를 물어 왔다.
그리고 며칠 뒤 여러 잡곡이 섞인 택배가 도착했다.
아무개의 사랑처럼 밥이 살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그 아무개에게 한 달에 한 번 마술에 약하게 걸리라고
비오는 날 파전을 먹은 뒤 마술 주머니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내일에는 김천에서 사 온 배를 싣고 엄마한테도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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