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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햇살가득한 2007. 2. 26. 23:25
김치
번호 : 209   글쓴이 : 김삿갓
조회 : 91   스크랩 : 0   날짜 : 2003.12.18 16:05
지난주에는 파주에 사는 언니네 집에 갔었다.

이천으로 오면서 엄마가 심은 총각무로 김치를 담갔다길래

냄새 때문에 싸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엄마가 심은"이라는데

마음이 동하여 좀 싸달라고 하였다.

비료를 많이 줘서 물컹 씹히는 총각김치와는 달리

딱딱하고 작을 거란 생각에 와작와작 씹히는 그 맛을 생각하며

좀 냄새나고 번거로운 것을 참자고 생각했다.

조금만 싸라고 작은 그릇을 내밀었더니

언니는 그릇보다 더 넘치게 비닐봉지에 그것을 넣어 그릇에 넣었다.

물론 뚜껑이 맞물려지지 않고 모자마냥 올라 앉아 있는 꼴이었다.

다섯 겹이나 싸서 국물은 흐르지 않을 듯 해서 가방에 넣었다.

허나,

김치의 자기 존재 방식은 대단한 것이었다.

버스를 탔는데 바로 옆자리에 사람이 없는 것이 다행이었지만

전철을 탔을 때 옆의 여자는 눈에 띄게 얼굴을 찡그렸다.

"지는 김치도 안 먹고 사나"

하는 맘도 있었지만 전철 안으로 진동하는 김치 냄새에 등을 기대지도 못하고 앉았는데

왜 이리도 차는 천천히 가는 것인지.

결국은 참지 못하고 몇 정거장을 남겨 두고 문 옆으로 가서 섰다.

시외 버스를 탈 때는 내 꼭 밑에 짐칸에 넣고 타리라

그런데 이천으로 출발하는 버스는 순서대로 타는 지라 순간 움직였다간 내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에라, 다시 들고 버스를 타서 의자 위 짐 칸에 두었다.

김치 냄새는 내 옆에서 나지 않고 위에서 흘러흘러 다니리라.

내 다시는 김치를 갖고 다니나 봐라.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 보니

김치를 담은 비닐봉지가 가스가 차서 터지지 일보 직전이다.

뻥 소리가 날 거 같아 포크로 조심스레 찔렀더니

녀석 그 냄새의 위력에 비해 피식 가스를 뽑아낸다.



손가락만한 작고 딱딱한 총각 김치를 와작와작 씹으며

역시 음식은 집에서 한게 최고야를 외치는 걸 보면

김치 떨어지면 또 갈등을 할 거 같다.

김치를 갖다 먹을까 사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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