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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벼락

햇살가득한 2007. 2. 26. 23:26
뚝배기 벼락
번호 : 312   글쓴이 : 김삿갓
조회 : 88   스크랩 : 0   날짜 : 2004.01.13 21:13
점심을 만두 3개로 때우는 통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며 저녁 식단을 짰다.
달래를 송송 썰어 넣고 청국장을 끓여야지.

불린 표고 버섯을 넣고 두부, 청양 고추도 썰어 넣었다.
혼자 사는 살림.
누가 영양 챙겨주랴 싶어
볶아서 가루로 낸 칼슘의 왕, 멸치 가루도 넣었다.
그러나 청국장은 김치와 궁합이 맞는 거 같아
청국장 대신에 달래와 어울릴 된장을 떠 넣고 뚝배기 뚜껑을
그래, 뚜껑을 덮고 싶었다.
손잡이가 밋밋해서 늘 떨어뜨릴 위험을 안았던 뚝배기 뚜껑.
그것이 밑으로 곤두박질 친다.
또 깼구나!!!
그러나 두쪽은 아니더라도 어느 귀퉁이라도 떨어져 나갔음직한 뚝배기 뚜껑은
내 왼발 엄지발가락으로 내려 꽂혀 자기는 온전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양말을 벗고 보니 금세 퍼어렇게 멍이 들었다.
주인의 작은 키를 위장시키려고 높은 구두를 신어 삐딱하니 돌아간 엄지 발가락.
거기에 기억에도 없는 사고로 1/3만 붙어 있는 엄지 발가락의 발톱이
오늘 Are you married? 라고 물으며 당연히 Yes 를 기대함직한 파트너에게 No 를 외쳐준 내 처지와 오버랩 되는 것이었다.
호호 입김으로 불어도 보고
굴러도 봤지만
고통의 강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어디 피라도 나야 이웃집 사람을 불러 약이라도 구해 보는 건데
속으로 속으로만 아픔을 간직하는 피멍은
고통을 참고 있는 나와 동병상련을 느끼게 한다.
가스불 위의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고소하다는 듯 와글와글 떠들어 댄다.
그래,
차라리 울어 버리자.
이래저래 다친 몸과 맘을 눈물로 쏟아냈더니
신기하게도 발가락의 고통이 줄어든다.

아직도 통증은 계속되고 색은 더 짙어질 수 없는 흑빛으로 변했지만
며칠 후
저절로 터져 새 살로 살아나갈 엄지 발가락이길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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