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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낳아봐야 에미 심정을 알지

햇살가득한 2007. 2. 26. 23:47
애를 낳아봐야 에미 심정을 알지
번호 : 1795   글쓴이 : 김삿갓
조회 : 199   스크랩 : 0   날짜 : 2004.12.31 21:48
난 아직 애를 낳아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엄마한테 참 못되게 군다.
말도 은근슬쩍 돌려서 하면 될 것을 직설적으로 해서 엄마 속을 긁어 놓는다.
거기다가 어떤 때는 신경질도 낸다.
그래도 월급 때가 되면 사고 싶은 구두를 몇 번이고 신어보다가 돌아서서 용돈을 부쳐 드리곤 한다.
엄마는 나를 키운 보람을 어쩌면 다달이 내 이름 석자가 찍혀 들어 오는 통장을 보고 확인하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아직 엄마가 열 달 동안 행동거지를 조심하면서 나를 낳은 걸 손톱깎이에 깎여 나가는 손톱만큼도 이해하고 있질 못하다.

오늘은 방학을 하는 날이다.
어제 늦게까지 청소를 해서 오늘은 뒷정리만 좀 하면 아이들을 일찍 돌려 보내려던 참이었다.
우리도 겪지 않았던가. 방학식하는 날엔 공부도 안 하고 온통 떠들어도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는 말씀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하다가 해방의 순간을 맞이하던 때를.
나도 애들한테 그 맛을 보여 주고 싶었던거다.
어제, 오늘 이틀에다가 개학해서 사흘, 겨우 닷새만 나오면 중학생으로 올라가는 우리반 녀석들은 어제는 있는대로 간땡이(이런 표현 쓰면 안 되지만)가 부은 녀석이 있었다.
글쎄, 체육시간에 슬쩍 세 명이 사라진 거였다.
고자질하기 좋아 하는 녀석은
'이런 얘기 하면 친구들을 배신하는 거지만 선생님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걔네들 집에 갔어요."
하는 거다.
가슴 저 밑 바닥에서 열이 확 받아 올라온다.
"수업 시간에 집엘 가?!"
내가 바쁜 일을 처리하느라 좀 늦게 나갔더니 간땡이 부은 녀석이 자기네들말로 토낀 거였다.
그 수업이 끝날즈음 녀석들이 나타났다.
집에 간 건 아니고 축구가 재미 없어서 학교 뒤 주차장에서 게임 얘기를 했다나.
미심쩍었지만 그냥 믿어 두기로 하고 반성문을 한 장씩 받아 뒀다.
녀석들의 말은 그럴싸 했다.
"공동체 생활에서 이탈해서 개인 행동 한 것은 잘못 된 일입니다. 다음부턴~~~~"
분명 그렇게 썼었다.
그리고 어제 세 명의 녀석들을 벌로 오늘 청소를 시키기로 했다.
오늘 내가 이것저것 치우는 사이 내 뒤가 휑 빈 것이다.
녀석들이 튄 거였다.
두 계단씩 뛰어 내려가 하교하는 아이들 틈에서 앞머리가 왼쪽눈을 덮어 보는 나도 답답해 했던 녀석을 찾았다.
없었다. 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다니는 시커먼 옷을 늘 입고 다니는 녀석도 눈에 띄지 않는다.
늘 눈에 힘을 주고 있는듯한 그래서 호기심 꽤나 많아 보이는 녀석의 뒷모습도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반 의리파 녀석이 눈에 띄었다.
"세 녀석 어디갔니?"
"토꼈어요. 제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 튀면 40일 후에나 본다고 애들 사이에 삭삭 숨으면서 토끼던걸요."
열이 화악 받는다.
어제 도망갔을 때 회초리를 쳤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러면서 텔레비젼 뒤에 두고 한 번도 써 먹지 않은 각목도 순간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가서 잡아 와라. 선생님 지금 열받았다고 오늘 밤 12시까지라도 기다리겠다고 꼭 오라고 해라."
평소 신임을 팍팍 받았던 의리파 녀석이 형사마냥 녀석을 잡으러 복도 저 쪽으로 뛰어갔다.
쓰레기통도 비워서 닦아야 하고, 교실 바닥도 치워야 하고 재활용 종이도 창고로 보내야하고.....
다른때는 다음에 해도 될 일을 오늘은 꼭 해야 될 방학날인 것이다.
내가 열 받은 이유를 생각해 봤다.
내가 그 많은 청소를 혼자 다 해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선생 얘기를 무시하고 도망갔다는 그 권위의식이 무너져 버린 데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복도를 다니며 다른반 녀석들을 불러와 청소를 대충 시켰다. 물론 그 중에 우리반 녀석 한 명에게는 이런 약속을 잊지 않았다.
개학되면 청소당번을 꼭 빼주겠노라고.
의리파녀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있는 걸 보고 쫒아 갔는데요. 산으로 도망갔어요. 어떡하죠?"
"그럼 집 문에다 글을 써 놓고 와라. 내가 늦게까지 기다린다고."
"그럼 산으로 가서 좀 더 찾아 볼게요."
역시 녀석은 내가 믿어 주었던 신임을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결재를 받느라고 교무실 이리 저리로 뛰어다니는 동안 세 녀석이 돌아왔다. 풀이 잔뜩 죽어 있었다.
이미 실내화 가방은 집에 팽개쳐두고 왔는지 양말바람으로 청소를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 할텐데.
우선 청소나 시키고 차분하게 야단을 쳐야겠다며 이것저것 청소할 것을 알려 주었다.
녀석들은 그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가 걸레를 빨아다 창틀을 닦으며 한 마디 불평조차도 하지 않았다.
맨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디디며 청소기를 돌리고 빗자루질을 했다.
"발시리겠다. 실외화 바닥 깨끗이 닦아서 신고 청소해라."
청소를 대충 다 한 거 같았다.
학기초에 책상위에 덮여 있던 두꺼운 유리가 우리반 녀석들 등쌀에 세 조각이 나 있었다.
그걸 치워주는게 다음 이 반을 맡을 선생님에게 좋을 것 같았다.
애들을 시켜 깨진 유리를 들고 4층을 내려가 수도가를 지나 건물 하나를 돌아 쓰레기 장에 갖다 버리라고 하기엔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다.
귤상자에 유리를 담고 의자로 내리쳐서 유리를 조각 냈다.
물론 애들은 도망갔던 죄책감에 삐져나온 유리를 상자에 잘 담으려 했다.
"손 다친다. 놔둬. 내가 할게."
내 손도 쇠를 입힌 손은 아니었다.
"이 녀석들아, 니들이 이런 걸 알겠니? 니들이 다칠까봐 선생님이 다 하는 거?"
귤 상자 양쪽에는 손가락을 넣어서 쉽게 들 수 있게 구멍이 나 있었다.
녀석들이 행여나 그 구멍에 손을 넣어 유리를 들고 갈까봐 손가락을 넣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두 녀석에게 들려 보냈다.
녀석들이 돌아왔다. 책상 머리에 세 녀석이 나란히 섰다.
일단 침묵을 보냈다. 녀석들이 떠들거나 화가 났을 때 쓰는 나의 행동방식이었다.
"니들이 청소를 안 하고 가니까 7반 애들이 했잖니? 남을 도와주진 못할 망정 피해를 주면서 살지는 말아야지."
어쩌구 저쩌구 훈계를 했다. 물론 격앙된 목소리도 아니었고 질책하는 투도 아니었다.
녀석들은 창문을 열어 놓고 이것저것 청소하느라 콧등이 빨개져 있었다.
거기다가 한 녀석은 외투는 벗어 두고 왔는지 마른 몸이 더 추워 보였다.
"수고 했다. 중학교에 가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점심 먹고 입가심으로 선생님들과 나눠 먹으려고 남겨 두었던 귤을 녀석들에게 두 개씩 쥐어 주었다.
"방학 잘 보내고!"
복도 저 끝으로 멀어져 가는 녀석들에게 인사를 했다.
녀석들도 맞받아 인사를 하더니 계단을 총총히 내려가 버렸다.
칠판을 지우다가 귀퉁이에 000 이라고 써 있는 이름을 보았다. 녀석들, 자기넨 돌아 왔다고 pc방으로 토꼈다는 녀석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다.
물론 난 그 이름을 보고서 개학 때 청소를 시킬 예정이다.

애를 낳아봐야 에미 심정을 알지.
내가 꼭 그 짝이다.
내가 녀석들 때인 6학년 때였다.
요즘이야 보건소에서 치과 진료를 나오지만 그 때는 동네에 있는 군대의 군의관들이 우리들 이를 검사해줬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군의관을 돕느라 교무실에 가 있었고 우리들은 자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언비어가 나 돌기 시작하는 거였다.
충치 뿐만 아니라 덧니도 다 뽑는다는 거였다. 5학년 약국집 딸은 이를 뽑다가 기절을 했다는 무시무시한 말과 함께.
어느 때 부터인가 아이들 자리가 점점 비어 간다고 생각했다.
난 친구 숙자와 화장실엘 가려고 교실을 나와 관찰원을 지나고 있었다. 그 때 아이들 등쌀에 말라버린 연못안에서 우리반 아이들 얼굴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제비새끼마냥 얼굴을 내보였다.
손짓을 하길래 그냥 가 봤다.
애들은 빨리 들어오라고 했다. 얼떨결에 들어갔다. 가서보니 거기엔 이를 뽑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충치가 있는 애, 뻐드렁니, 덧니 등등.
애들은 자기들의 도망이 탄로 날 까 봐 숙자와 나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 가서 일러바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연못을 나와 논두렁을 타고 줄행랑을 쳤다. 학교 안 연못은 발각되기가 쉽다는 거였다.
나도 덩달아 몸을 낮추고 뛰었다.
곰골에 사는 희순이는 자꾸만 뒤쳐져서 논두렁에 몸을 바싹 붙인 우리들을 애타게 했다.
희순이는 무릎 관절을 앓고 있었다.
논두렁을 의지해서 우리들의 줄행랑은 뒷산으로까지 이어졌다.
마음이 좀 놓였다.
그러자 심심해졌다.
나무를 잘 타는 해영이가 허벅지 굵기만한 낙엽송을 타고 올라갔다.
어느 정도 올라가서는 가지를 휘어 준다.
낙엽송은 키만 삐쭉하게 크는 침엽수라 가지도 별로 없고 낭창낭창 휘어 져서 밑에 있던 아이가 낙엽송 끝을 잡는다.
그러면 해영이는 휘어줬던 가지를 놓는다. 그러면 밑에 있던 아이가 낚시꾼이 채는 낚시줄마냥 공중으로 솟는 거다.
우리는 이빨이 뽑기 싫어서 도망을 쳐서 그렇게 산에서 놀았다. 방공호에도 들어 가기도 하면서.
이미 학교가 파할 시간이 지나 버렸지만 이를 뽑는다는 두려움보다 복도 저쪽 끝에서 짜락짜락 슬리퍼 끌고 오는 그 호랑이 선생님 때문에 선뜻 산을 내려 올 수 없었다.
우리들은 점점 초조해졌다. 나무 뒤에 숨어서 보니 우리반 아이들이 화장실로 연못으로 관찰원으로 우리를 찾으러 다니는 게 보였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그 아이들에게 띄려고 일부러 나무 뒤에서 나와 얼쩡거리다가 발견을 당하고야 말았다.
우리는 물이 질퍽한 논두렁 고랑을 푹푹 빠져 걷지 않고 논두렁 위를 어깨를 수구린채 걸어 가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처음엔 굵은 빗자루로 우리 엉덩이를 때렸다.
그러더니 그 똥색 슬리퍼를 벗어 종아리를 때렸다. 종아리에는 슬리퍼 바닥의 육각형 무늬가 찰싹찰싹 안겼다.

언젠가 이 이빨뽑기 싫어서 도망간 사건을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나무를 그렇게 탈 수 있다구요? 참 재미있겠네요."
하고 반응을 보이던 녀석들이었는데 청출어람이라던가? 그 선생에 그 제자인가보다.
"니들도 나중에 선생 돼 봐라. 그래야 내 심정을 알 수 있지."
년말에 방학날이라 손끝에 일을 잡기가 싫지만 그래도 그 손끝으로 일을 마무리 해야 한다.
내 심정을 이해해야 뭐하겠니? 그저 방학이나 무사하게 잘 보내다 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