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밤나무

햇살가득한 2007. 4. 11. 23:25

 

어렸을 때 살던 우리 집 뒤에는 산이 있어서 울타리가 산 중턱까지 둘러 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뒤에는 산이고 앞 개울이 흐르니 흔히 말하는 배산임수격이었다.

우리집 지붕은 스레트였다.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초가집을 걷어 내고 스레트를 입혔다.

겨울에는 새들이 처마에 깃들어 들락이던 짚을 둥둥 말아 내던졌을 때 갈비뼈 같은 서까래가 앙상하게 드러났던 기억이 난다.

스레트 지붕이라는 게 제 주장이 어찌나 강하던지 비가 오면 그 소리가 요란했다.

그 스레트 지붕위로 산 중턱 울타리 너머에 있는 밤나무가 넘실대었다.

그래서 가을이 되어도 스레트 지붕은 빗소리 대신 알밤으로 제 목소리를 내었다.

초록빛이던 밤송이가 노란 연두빛을 띠면 알밤이 벌었다.

알밤은 지붕위로 떨어진 뒤 튕겨져 풀숲으로 숨거나 아니면 장독대를 한 번 더 치고는 땅에 나뒹굴렀다.

알밤이 벌기도 전에 엄마는 언니랑 나랑 동생에게 우리들 엉덩짝만한 항아리를 하나씩 주셨다.

새벽녘이 되면 바람과 함께 밤 떨어지는 소리가 스레트를 울렸다.

우리 셋은 깨우지 않아도 어둠이 가시지도 않은 밤나무 주변을 알밤을 찾아 허리를 잔뜩 구부렸다.

일년 내내 관심 가져 주지 않던 밤나무를 가을 한 때 알밤을 줍느라 울타리 주변에 길이 날 정도였다.

희뿌옇게 날이 밝아 올 때면 우리 셋은 서로 자기 항아리 단지를 열어 보이며 양을 비교해 보았다.

아침잠이 많은 우리 남매가 밤 떨어지는 소리에 용수철마냥 튕겨져 나가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반짝반짝 윤기나는 갈색 밤을 줍는 것이 재미기도 하려니와 긴 저금통장에

숫자가 늘어 가는 것 또한 그에 못지 않는 흐뭇함이었다.

장날이면 엄마는 그간 모은 알밤을 내다 팔아 돈을 세 등분으로 나눠 주셨다.

올 여름에 본 그 밤나무는 이젠 늙어 팔을 뚝뚝 부러뜨리며 주저 앉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청소를 하다보면 연필과 지우개가 보통 서너개씩은 나온다.

연필꽂이에 꽂아 놓으면 그나마 이름표를 붙인 것은 주인이 찾아가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내내 남아있다.

자기 물건을 소중히 하는 마음들이 없다.

물건이 흔하게 넘쳐나기 때문일 것이다.

난 우리 나라 부모들이 자식에게 집착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경제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보통 대학까지의 학비를 대 주고도 직장을 못 잡으면 잡을 때까지 용돈을 주고 직장을 들어가서는

이제 결혼 할 때가 되니 집이나 살림살이 장만 해 주느라 부모님들은 말 그대로 허리가 휜다.

여기서 끝나면 참 다행일 것이다.

자식의 빚을 대신 갚고 목숨을 끊는 부모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경제적인 것이 얽혀 있다보니 부모와 자식관계는 나이가 들어도 서로 독립하지 못하고

마치 소유물과 같은 그런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얼마전에 모 은행에서 어린이용 저축 상품을 만든 것과 경제 교육을 하는 걸 보고

이제서라도 시작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론 뿐이면 무엇하랴.

내 물건을 아껴쓰기 위해서는 그 물건을 가치를 알아야 한다.

나는 훗날 내 자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병아리를 몇 마리 사 줄 생각이다.

그 닭을 아이가 잘 키워 어미 닭을 만들어 알을 낳으면 아이에게 달걀을 사 먹으리라.

아이는 달걀을 팔게 되겠지만 작게는 수학 능력을, 크게는 독립심을 배우게 되리라.

 

200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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