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이님에게
(둥글이라는 남자는 최근에 인터넷으로 알게 된 환경보호운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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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바라다보는 어머니가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원을 해서 뵙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나 역시 좁은 골목길에 빽빽이 주차해 놓은 차량들과 사람들 사이를 적진을 탈환하고자 돌진하는 병사처럼 그렇게 비집고 들어가야했습니다.
차량은 늘어만 갑니다.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해 간다는 걱정 어린 아나운서의 멘트는 그냥 뉴스거리일 뿐입니다. 아무리 기름값이 올라도 차량 등록대수는 점점 늘어만 갈 것이고 그 차량들이 덜컹거리지 않고 곧은 길을 잘 달릴 수 있도록 도로는 뻥뻥 더 뚫어 댈 것입니다. 이동시간을 줄이면 물류비가 적게 든다고 하겠지요.
오늘 사회시간에 첨단기술에 관한 수업을 했습니다. 전자 제품의 변천사를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늘어 놓으며 첨단 기술이 주는 이로움에 대하여 역설했지요. 그리고 미래의 첨단 제품이 어떤 것이 나올까 잠깐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냉장고에 어떤 식료품이 들어있는지 체크해서 떨어진 것은 냉장고에 저장돼 있는 인터넷에 연결해서 스스로 제품을 마트에 주문을 하고 그것을 요즘 전자렌지에 ‘국 데우기’버튼을 누르면 되듯 미리 입력된 요리과정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고소한 튀김이 튀겨져 나오는 그런 세상이 될 것이다. 기술도 부가가치라 부족하면 외국에서 외화를 들여 사 와야 한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죠. 그렇게 편리한 생활에 시간 절약이 되면 그 남는 시간에 뭘 할 거니? 아이들은 단순하게 컴퓨터 게임이요. 하고 대답했지만 그건 단순한 아이들의 발상이겠지요. 아이들과 속도와 편리함을 쫒아가는 수업을 하지만 정작 그것으로 인한 부작용은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차를 처음 끈 것은 4년전이었군요. 차를 바꾼다는 친구에게 금목걸이 달랑 하나 사 주고 받아 온 차. 난 그때까지만해도 차로 인해 내 생활과 성격이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지요. 자전거를 타면 걷는 것 보다 지루하지 않아서 좋고 휙휙 지나치는 차와는 달리 주변 감상도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차를 타고 보니 속도와 비례하듯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한 마음이 어느새 생겨버렸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이젠 차를 타고 가야 합니다. 잠시 걷기라도 하면 근육이 당기고 큰일 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나이탓도 있겠지만 슬그머니 늘어가는 배둘레도 마치 타고 다닌 자동차의 타이어를 하나 걸친 느낌입니다.
속도 전쟁을 펼치고 있는 이 시대의 산물인 휴대폰도 사고 말았습니다. 이젠 공중전화가 가까이 있어도 거기서 전화를 거는 일도 없습니다. 불편하기 때문이죠. 또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을 수화기를 들어 몇 번을 망설이다가 버튼을 누르고 상대방이 받으면 끊어버리는 그런 감성도 사라졌습니다. 상대방 휴대폰에는 발신자의 전화번호가 찍혀 나오니까요.
초등학교 다닐 때였지요. 우리 동네에는 윗마을 아랫마을 통털어 몇 십리나 돼도 TV가 있는 집이 딱 한 집이었습니다. 동네에서 제일 부자인 방앗간을 하는 친구네 집이었는데 TV가 놓여있는 사랑방에는 언제나 남녀노소가 가득했지요. 어린 아이들은 맨 앞줄에 연세드신분은 아랫목인 맨 뒤쪽 벽에 기대 앉아서 머리가 닿은 부분은 머리통만하게 도배지가 까맣게 될 정도였으니까요. 박정희대통령의 부인이 총을 맞고 돌아가셨을 때는 방 한 칸이 모자라 방앗간으로 TV를 옮겨 왔는데 기계 사이로 눈물을 찍어대며 운구행렬을 보던게 기억납니다. 그 때도 사는 게 바쁘긴 했을 겁니다. 농사일을 했던 엄마가 늘 밤이나 돼서 돌아오셨으니까요. 그러나 방앗간집 뜰에 살구가 노랗게 익으면 한 바가지씩 담아 집집마다 돌렸던 인심이라는 게 있었지요. 사회책에는 흑백→칼라→벽걸이형TV 이렇게 TV변천사가 나와 있었지만 난 위의 이야기를 곁들여줬어요.
오늘 어머니 병실에 갔더니 저녁을 받아만 놓고 문밖으로 나와 계시더군요. 보험회사에서 는 퇴원을 하던가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반 협박을 하고 간 모양입니다. 차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바꿔 놓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은 과실을 보험료라는 돈으로 환산하면 그 뿐. 보험료를 받은 보험사는 사람의 안녕은 뒷전이고 이익을 남기려 반 협박조의 언행을 일삼고...
집으로 돌아오니 남자 조카아이가 늘어놓은 설거지가 짜증을 부추겼습니다. 고기를 구워먹고 그냥 설거지통에 담궈놔서 온통 그릇들이 미끌거립니다. 휴지로 닦은 뒤 담궈 뒀더라면 물과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조카의 기름기 있는 그릇을 설거지통에 그대로 담궈두는 것은 이미 습관화 되었고 습관은 반복일 뿐, 거기에 어떤 문제제기는 없습니다.
나도 아이들 앞에서 교과서에서 나와 있는 대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많이 늦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둥글이님이 몇 십키로를 걸어서 초등학교를 찾아가 나눠준다는 스티커를 받고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미안하지만 난 회의적입니다. 나는 둥글이님이 추위에 몇 번씩 깨어 밤을 느꼈을 침낭에서 나와 텐트 지퍼를 열고 맞이하는 싸늘한 아침 공기와 25키로가 넘는 짐들의 무게를 무릎에게 전가하는 것까지만 인간적인 안스러움이 들 뿐입니다. 속도에 길들여진 부모들과 그 부모들의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환경문제가 남의 일일뿐이지요.
과학시간에 전기회로만들기 실습을 했습니다. 음료수 병뚜껑을 모아 철사로 연결해서 건전지를 끼우고 스위치를 누르면 문어발처럼 놀이기구가 움직이는 장난감 만들기요. 사회책에서는 첨단기술을 가르치고 과학시간에는 장난감을 만들면서 집 지을 계획을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지요.
“선생님, 쩐이 많으신가봐요?”
아이들은 대뜸 이렇게 질문해 오더군요.
“쩐? 나 그런 거 없다. 내 스스로 지을 거다. 동네에서 흙 구해서 벽돌 찍어서.”
아, 이야기에 탄력이 붙어 버렸네요. 수업시간에 삼천포로 빠지면 애들이나 선생이나 서로 신나잖아요.
“내년에 지을 거는 작은 방이고 나중에는 산 중턱에 지을 거다. 무거운 짐을 들었을 때는 전기를 넣어주면 집앞까지 닿을 수 있게 모노레일을 설치할 거구. 이렇게 놀이기구처럼 전기를 넣어주면 되는 거지. 설계도도 다 그려 놨다. 참 전기 회로도는 안 그려놨네.”
했더니 한 녀석이
“맞어. 선생님 수첩에 있는 거 봤어.”
한다. 내가 언제 그 아이에게 그것도 보여줬었던가?
“내려 올 때는 비스듬하니 비끄러지다보면 아래까지 내려올 거구. 그리고 다락방을 만들 거다. 거침없는 하이킥 봤지? 그것처럼 굵은 밧줄을 하나 늘어뜨려 놓고 운동삼아 타고 올라갔다가는 내려올 때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게 할 거야.”
아이들은
“야, 재밌겠다. 선생님, 나도 보러 갈게요.”
“밧줄 타기가 싫어지면 계단으로 올라가고. 계단이 비스듬하니까 미끄럼틀을 그 옆에 더 만들면 되지. 풍차도 하나 달아서 풍력을 이용해 에너지를 비축할거다. 풍차가 돌아가는 끝에 방아를 설치해서 믹서기 대용으로 쓸 수도 있겠고. 그리고 하수구 말야. 작은 연못을 하나 파서 쓰고 버린 물은 거기로 흐르게 할 거야. 연못에는 수질 정화에 끝내주는 미나리와 연꽃을 심을 거구.”
“숯도 묻는다면서요?”
“그래. 숯을 묻어 한 번 더 정화해서 다시 집안 변기로 흘러가게 해야지. 빗물을 모아 정화해도 괜찮겠지.?”
딴짓하던 아이들도 관심을 보입니다.
이참에서 그제 수확해서 김장까지 담근 배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녀석들은 내가 나이 많다고 하는데 아줌마 티를 낼까 싶어서요. 토양이 산성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석회석을 뿌린다는 걸 알려 주면서 계란 껍질도 석회석의 일종이라는 얘길 했었죠. 슬쩍 농약을 치지 않아서 벌레를 일일이 잡아 줘야 하는데 징그런 벌레가 꿈에까지 나타나서 두 번이나 깨었었다는 얘기는 했던가 안했던가? 하여튼 50포기되는 배추를 키우며 배추 자라는 것이 아이들 키우는 것과 똑같구나. 같은 조건에서 키우는데도 어느 놈은 쑥쑥 자라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전혀 자라지 않는 놈들도 있고. 그런데 학교에서는 평균인만을 길러내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 가면서.
내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이런 거랍니다. 입으로 교과서에 있는 지식 전달하는 것이 아닌 식물을 키우며 아이들과 사색하고 보여주고 환경을 실천하는 일. 올해 터를 마련하여 촌생활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무늬만 촌생활일 뿐. 산 중턱에 꼭 필요한 가재도구만 들여 놓고 살 작은집을 짓고 레일을 설치하려면 더 촌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서 나무를 심어 숲이 주는 느림과 여유를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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