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울 엄마의 근황

햇살가득한 2008. 1. 30. 23:29

약장사는 떠나갔다.

정해진 한 달짜리 프로그램으로 노인들을 웃기고 울리고 어루만지며 돈을 뜯어내서는 보따리를 쌌다.

엄마가 일주일도 채 안돼서 10여만원어치의 물건을 사 오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의 물건을 사오시면 방송국에 고발하고

가서 깽판을 쳐 놓으리라. 

저 밑바닥에 나도 모르게 들어 앉아 있는 더러운 성질을 끄집어 내리라 다짐하고 있던 차였다.

엄마가 몸에 좋다는 흑염소를 드시기 시작한 지 이틀이나 됐을까.

엄마는 밥 한 술 못 드시며 3일동안을 꼬박 몸살을 하셨다.

이건 분명히 흑염손지 백염손지 그 탓일 거야.

신경이 곤두섰다.

엄마가 밥 숟가락을 겨우 드셨을 토요일. 약장사는 간다고 하였다. 

사람 좋아하는 엄마는 집에서 친목회를 하셨는데 

나를 의식해서 친구들끼리 목소리를 낮췄다가 키웠다가 하시며 말씀하시는 걸 듣고는 모른척 했다.

그럴싸하게 황금색으로 싼 우황청심환을 드시며

"이거, 물엿이야. 나두 먹어봤는데 청심환은 이렇지 않어."

하시는 거다.

두 할머니는 물건값을 갚으러 간다고 나가셨다.

나중에 슬쩍 물어보니 삼십만 원, 백만 원 심지어는 오백만원을 주고 수의를 샀다는 분까지...

"엄마, 다음에도 약장사 오면 또 가겠네?"

이제는 안가신댄다.

속은줄 알고 있다고...

100미터도 안 떨어진 노인복지센타에 가서 엄마가 들을만한 프로그램 종이를 가져왔다.

달력을 꺼내 놓고

한글반은 파란색 볼펜으로 월요일, 목요일에

맷돌 체조는 초록색으로 화요일, 금요일에

노래방은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쳐 드렸다.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복지관에서 새로운 할머니들을 사귀어서

집에서 국수를 삶아 먹자고 잡아 끌 날이 곧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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