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이야기를 나누고 싶거든 녹차를 마신다고 하라

햇살가득한 2008. 5. 5. 00:14

출근시간으로 맞춰진 몸 속의 타이머는 일요일에도 작동을 한다. 

알람이 울리기 전 6시경에 일어났다.

현관문을 밀고 나가면 사열하듯 이슬을 달고 있는 식물들이 인사를 한다.

감자 이파리가 무당벌레 식당이 되어 목초액과 물을 반반 섞어 뿌려 줬건만 

무당벌레는 비웃듯 이파리에 매달려 구멍을 내고 있다. 

오늘은 목초원액을 그대로 칙칙 뿌려댔다. 뒷면까지 뒤집어 가면서.

그리고 매실 나무를 한 그루 담장에 바짝 붙여 심었다.

담장에 두 알씩 심은 옥수수가 손가락 길이만큼 자라고 있었다.

손을 털고 들어와 선물 할 찻잔받침을 마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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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리다. 

번쩍, 할 일이 떠올랐다.

이런 날은 자전거 타기 딱 좋다는 것.

제주도 자전거 여행 못 간 것을 아쉬운대로 동네 구경이라도 가자는 것.

식물원으로 꽃구경을 가자는 것.

거기다가 어제 자전거용 운동화를 샀다는 것.

 

<종아리가 아닌 신발에 집중을...>

 

 

4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갑자기 바빠진다.

아침밥을 해 먹을 시간이 없다.

떡을 렌지에 데워 먹고 물을 챙기고 자전거를 꺼냈다.  

 

 <양갈래 머리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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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꽃으아리>

 

 

식물원을 꼼꼼히 구경하고 내려와 내린 결론.

자연과 어우러진 식물원이 아닌 인위적으로 꽃만 모아 놨다.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는데 온통 시멘트로 발라 놨고

꽃들의 경계도 시멘트다.

 

페달을 밟는다.

내리막길에서는 어서 가라고 바람이 잘도 비켜 준다.

다시 오르막길.

자전거 바퀴는 안 올라가겠다고 버팅긴다.

팔로 핸들을 단단히 잡고 몸을 낮춰 숨을 몰아 쉬어야 그나마 올라가 준다.

 

오늘 점심은 막국수로 먹자.

헬맷을 벗으며 자리를 잡았다.

우선 먹고 있으라며 물김치 한 대접에 숟가락을 걸쳐 내 왔다.

새콤하니 맛있다.

이어 막국수가 나왔는데 내 이럴 줄 알았다.

끓는 물에 바로 내린 것이 아닌 때에 맞춰 건져 놓은 막국수는 풀어질 듯 불어 있었다.

그래도 다 먹고 일어서려는데 아주머니 잽싸게 자전거용 빈 물통을 보더니 물을 채워다 주신다.

먹다 남은 물김치를 싸달라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새로 담아 주신다.

물김치를 매달고 내리막길을 달린다.

시속 43km. 

몇년 전 브레이크 안 잡고 내리막길에서 내달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속도계가 없어 몰랐는데 같이 달린 사람 최고 속도가 70 몇 키로 나왔다고 하니 나고 얼추 그쯤.

지금 생각하면 미.쳤.다.

119에 실려 가고 나서야 속도가 무서운 줄 안다.

이젠 그리 달리지 않는다.

어쩜 속도가 무서운 게 아니라 나이가 무서워지는 지도 모르겠다.

 

00 도예 연구소 이정표가 있었다.

전에도 지나가다가 한 번 들러 보고 싶은 곳이었다.

점심도 먹었겠다. 도자기 구경을 가자.

마당에 들어서며 구경을 왔다고 했더니 여자분이 들어가란다.

문을 열었더니 남자분(도예가)이 식사를 하고 있다.

다시 문을 닫았더니 괜찮다며 2층에서 구경을 하고 있으라고 한다.

밥은 먹었느냐고 물었다.

도자기 그릇을 숟가락으로 긁는 소리가 2층까지도 크게 들려 왔다

나무 계단을 올라 불을 켰더니 흙에서 모양새를 바꾼 도자기들이 꽤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고 또 돌고,

무릎을 굽히고 포개놓은 그릇을 하나 하나 꺼내고 만지고

다시 하나하나 포개 놓는데 도예가님이 오셨다.

도자기를 하냐고 물었다. 그냥 도자기가 좋다고 했다.

차를 마시겠냐고 했다.

미안해 하면서 그러겠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겠냐고 했다.

녹차를 마시겠다고 했다.

물을 끓기를 기다리며 마주 앉았다.

어제부터 전시라서 늘 바쁘다가 오늘부터 시간이 난다고 하셨다.

내가 운이 좋은거다. 어쩐지 들러보고 싶더라니.

그는 자전거에 대해 물었고

자전거를 타기 좋은 98번 도로를 머리속으로 짚어가며 꼼꼼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고

난 서각과 염색한 천으로 재봉질 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겠다고 나주에 다녀 온 얘길 했다.

도예가님도 서양화를 했는데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주다가 흙이 좋아서 길을 수정했단다.

도자기를 하고 있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는 내가 말을 할 때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 주었고

미소를 띌 때의 얼굴 표정에서 편안한 행복감이 묻어 났다.

나도 도자기를 만지고, 사람을 만나고 행복한 날이다.

얻어 온 나무가 있는데 사포로 문지를 거라고 하자

기계를 빌려 주시겠단다.

얏호!

그러잖아도 그걸 언제 손으로 문지르고 있나 엄두가 안 나던 차였다.

도예가님은 선뜻 사포기계를 꺼내 설명까지 곁들여 주셨다.

사포기를 자전거에 매달고 내리막길을 달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거든 훌쩍 마셔 버리는 커피가 아닌

자꾸 우려 내서 마셔야 하는 녹차를 마셔야한다고 생각했다.

  

 <사포로 다탁 밀기>

   

나도 이 다탁위에 찻잔을 늘어 놓고 사람들과 녹차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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