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기/텃밭

농촌환상깨기 체험

햇살가득한 2010. 8. 17. 19:39

목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이라 그런지 목이 안 좋은데 

엄마는 목에 좋다는 도라지를 키우자고 봄부터 성화였다.  

손바닥만한 규모로 보면 텃밭일텐데 40키로가 넘은 거리니 그것도 아닌 셈. 

씨앗 뿌리랴, 김매랴.. .. 그걸 5년 동안이나 해야 약효가 있는지라

차라리 사 먹는 셈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누누히 설명했는데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도라지 다 녹아 없어지겠어요."

밭주인 아저씨가 밭 되어가는 꼴을 보다가 참다 참다 전화를 하셨다.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열 일 제쳐두고 울 반 애들 두 명을 데리고 여주로 향했다.  

 

김을 두번 매 준 도라지 밭 

 

 

 

한번밖에 안 매준 도라지밭.

도라지밭? 숨은 도라지 찾기.

...

못찾겠다 꾀꼬리.

 

 

땅콩밭, 땅콩은 풀을 이기고 꿋꿋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땅콩 심을 때 비둘기 생각에 5~6알씩 심었더니 비둘기는 입맛도 다시지 않아서 너무 보인다.

 

 

허리는 아프고 땀은 소낙비 내리듯 흐르는데    

애들은 신났다.  

농촌에서 살기 힘든 것중의 하나인 벌레.

손가락만한 벌레를 아이들은 귀엽다고 만지는데

나는 진작에 저 멀리 도망가 있고

풀을 덥썩 잡기가 멈칫해 진다.

차라리 물리더라도 개미가 낫지.

개미밭 풀은 내가 뽑고 이번엔 애들은 저만치 가 있고.

 

 

오늘은 요기까지만.

작년에 TV, 인터넷도 안 되는 숲속 외딴집에서 하룻밤 자본 녀석들은 아예 잠잘 준비를 해 가지고 왔는데

정작 나는 두 시간이면 후딱 김을 매고 돌아가야지 하면서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았다. 

노동후의 옥수수 맛이란...   

 

 

전복 넣은 삼계탕을 찍었어야 했는데...

저녁을 거하게 먹고 

잠을 자고 풀을 마저 뽑기로 결정. 

 

다음날 7시도 안 돼서 일어나 해가 뜨기 전에 끝내야 한다며 밭으로...

지나가는 길에 호박꽃잎도 들여다 보고

 

 

 

군대가는 남동생 이발한 거 마냥 훤한 도라지밭,

정말 훤한 도라지밭, 그러나 도라지가 없다. 그리고 나무 같은 피마자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도라지 옮겨 심기. 아기 다루듯 살살.

 

 

지줏대를 세워주지 않은 더덕은 자기들끼리 꼬아 지줏대를 만들어 가고.

느이들도 샤워한 거 마냥 시원하겠다. 바람이 포기 사이로 불어 줄거야.

 

 

어~ 안돼. 아직 조금 더 할 일이 남았는데 해가 떠오른다.

된장, 청국장, 멸치를 넣고 끓이다가 호박잎 몇 개를 찢어 넣어 찌개를 끓였다.  

오늘 아침 밥상. 이 맛에 촌 생활을 동경하면서도 노동의 강도가 지나치다.     

                                                                                                              옥수수에 같이 쪄진 벌레  ↑

 

 

방아깨비가 뜯어 먹은 깻잎에 밥과 된장찌개를 넣어 쌈을 싸 먹고,

 

 

샤워하고 나니 눈이 살살 감긴다.  

 

세를 준 광주 집에 들렀더니 감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 전나무를 호박덩굴이 기세좋게 포위하고 있었다. 

가위를 들어 호박덩굴을 잘라 주고 나니 이놈들도 목에 넥타이 풀듯 숨을 좀 쉴 것 같았다. 

제법 굵어진 과일나무들, 내년엔 열매를 달아 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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