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기/텃밭

엄마의 텃밭

햇살가득한 2013. 7. 15. 23:15

2013.7.15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희망의 증거이다.

엄마는 온갖 씨앗들을 모았다. 늙은 호박을 쪼갰을 때 호박씨를 발려 내었고 

강낭콩을 수확해서도 고투리에 7개씩 든 통통한 녀석들을 따로 모았다. 

한옹큼 심은 완두콩을 거둬들여서는 내년에 심는다고 몇번 밥에 놔 먹지도 않고

옥상 양파 자루에 매달아 말렸다.

예쁜 꽃의 씨앗이 있어도 모아왔고 울타리콩도 꽃이 이쁘다고 심기도 했다.

작년에 5월이 되어서 이사오고 하나 둘 는 화분이 옥상에 제법 된다. 솔직히 화분이라기 보다 스치로폴들.

 

한동안 옥상에 지저분하다고 화분을 만들지 말라고 성화를 해 댔는데

요즘엔 엄마가 화초 크는 재미에 계단 손잡이를 붙잡고 오르신다.

나도 덩달아 하루 한 개의 토마토를 따 먹겠다고 2개의 모종과 가지 두 개를 사다 심었다. 

 

 

작년에 단호박을 먹고 거름되라고 던져 뒀던 두엄에서 호박싹이 나왔다.

한창 여름인데 열매가 맺히다 죽은 걸 보니 올해 수확은 글렀다.  

 

그래도 환하게 웃어주는 호박꽃들을 보는 것으로도 옥상에 올라온 보람을 느낀다.  

 

엄마의 경작본능은 무궁무진하여 시에서 빌려주는 3평정도의 텃밭은 남의 이름으로 3명분이나 분양받아 하고

아는 사람의 땅을 얻어서 들깨를 심고, 당근을 심고, 파를 심었다.

 

관절염이 있는 언니도 덩달아 노력봉사를 해야 하는 일.

이 많은 쇠비름을 죄다 뽑아다 효소를 담았으면 좋으련만 작년에 한 항아리 담은 게 있어서 올해는 참을란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을 건너다니는 엄마는 아마도 통증이 덜할 때는

저 파들을 심어서 집앞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니면 꼭 팔 생각이 아니었더라도 뻘겋게 드러나는 땅에 뭔가를 심어야 하는 엄마의 직성에 그냥 파를 심었는지도 모르겠다.  

 

 

울퉁불퉁 못생긴 당근. 그래도 주황색 당근이 도마에 자주 오르는 걸 보면 텃밭에 없어서는 안 될 품목이다.

 

들깨는 너무 많이 자라서 순을 베어다 데쳐 볶아 먹고 뿌리를 다 뽑아내고 새로 모종을 내었다.

 

엄마 때문에 일도 못하고 우리집에 와서 살게 된 언니는

덩달아 텃밭을 돌봐야 하고

겨우 집에서 몇 백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 두 모녀가 텃밭 행차를 할라치면

기사가 되어야 하는 게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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