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12
딱 2주일 전이었다.
엄마는 기운이 없으면서도 여주 주말농장엘 가자고 하셨다. 씨앗이랑 장화 등 짐을 꾸렸건만 결론은 안갔다. 심는 거야 밭을 갈아 놨으니 수월할텐데 몇 번 김을 매는 것이 관건이었다. 날은 점점 더워지는데 서너 번을 가서 김을 매야 농작물이 제대로 잘 자라기 때문이었다. 땅콩을 심을 때 욕심을 내서 땅콩을 4~5씩 심는다고 해서, 촘촘히 많이 심는다고 해서 많이 수확하는 것도 아님을 몇년 텃밭 농사를 지으며 터득한 것이다. 남들은 고구마를 심으면 심고 캐기만 하면 되는 줄 안다. 돌봐줘야하는 김매는 과정은 훨씬 더 힘든 일인데 말이다.
엄마는 차로 태워다만주면 혼자서 다 심고 가꾸겠다고 했지만 버스도 안 다니는 산골에 엄마들 태워다 드리고 나는 그늘에서 책만 보면서 놀 수 있느냔 말이다. 둘이 함께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엄마는 늘 욕심이 많아서 허리 한 번 쉬지 않고 일만 하다가 해가 져야 일어서는 걸 아는지라 (나는 작년에 고구마 심다가 손가락 관절 생겼었다.) 엄마의 인생을 그래도 따라하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다.
오늘 아침 일찍 여주 주말농장엘 갈 심산으로 7시 좀 넘어서 일어났다.
폐암에서 뇌로 전이된 엄마는 내가 여러 씨앗을 심어 놓으면 그거 크는 거 보려고 바람을 쐬러 나갈 수도 있겠다 싶어 심겠다고 했더니 큰언니 병실에서 나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제 엄마는 바깥 출입도 못하게 생겼다고. 혈압과 당 수치가 오르락 내리락 한댄다. 집에서 모시지도 못할 것 같으니 여주엔 어떻게 가겠냐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 10시 반이 넘어서야 여주로 향했다. 겨우내 고구마 싹을 내겠다고 냄새 난다고 내게 군소리를 들으며 키운 고구마 싹이라도 심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꼭 심겠다고 나섰다기보다 바람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감기로 3주동안 주말 내내 집에만 있었더니 또다른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기름값 그런거 생각하지 말고 바람쐬는 겸 도라지 밭이나 매고 와야겠다.
3년생은 거의 다 캐 먹고 작년에 뿌린 씨앗이 올라왔다. 2년만되어도 땅이 좋아서 실하게 자란다. 도라지 역시 심는 것 보다 풀 매는 게 더 관건인데 앞으로 3번 정도 더 김을 매주면 될 것 같다. 작년 겨울 도라지차를 만들어서 잘 먹었었다. 땅주인이 올해까지만 심으라고 하니 내년엔 어찌 옮겨 심던지 그건 그 때 가서 볼 일이고.
도라지밭은 1시간 반 정도 매고 나서 고구마를 심는다. 작년에 아저씨가 우리 밭만 안 갈아 줘서 밭 갈며 고구마 심었더니 더딘데다가 관절염까지 왔었는데 밭을 잘 갈아 줘서 땅이 푹신푹신하여 일이 훨씬 수월하다.
고구마 심기 전에 찰옥수수를 몇 알을 그늘이 지지 않게 밭 가로 심었다. 여름에 쪄 먹을 상상을 하면서.
도라지밭 빈 곳은 키를 맞춰 강낭콩을 심어 때우고 듬성듬성 나온 곳은 도라지씨를 뿌려 보충을 하였다.
땅콩도 세 고랑 심고 내년 씨앗이나 받자고 당근, 당귀, 쥐이빨옥수수도 심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우리 몫으로 준 밭이 더 있긴 했지만 이제 혼자 와서 김을 매야 하니까 하루 맬 분량만큼만 심고 욕심을 접었다. 오른쪽에서부터 도라지밭, 고구마 한 고랑, 땅콩 세 고랑이다.
호미와 씨앗들을 챙기고 쉬면서 보니 산이 연초록색이다.
이 좋은 색깔을 보지 못하고 엄마는 병실에 갖혀 있다니.
그나저나 땅콩 수확할 때까지만이라도 엄마가 살아 줬으면 좋겠다.
매실밭에는 쑥이 지천이다. 약도 치지 않고 차도 없는 산동네인지라 깨끗하다. 몇 년전 효소 담은 게 너무 달게 돼서 다시 담을까 하고 베어 왔는데 너무 많이 베었다. 다듬는 게 더 힘들다. 일단은 쑥이 후끈후끈하여 뜰까봐 거실에 펴 놓았다. 오늘은 쑥 때문에 보일러도 못 틀고 자야겠다.
나도 엄마처럼 일을 끊임없이 만들면서 살 팔자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