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기/꽃밭

김장을 기대하며

햇살가득한 2011. 12. 4. 19:44

도시의 아이들에게.

아니 어쩌면 아이들 보다 내가

식물을 키우고 싶었는지 모른다. 

토요일 재량 시간 2시간을 빼서

책상을 붙이고 앞치마를 두른 뒤 비닐 장갑을 끼고

무거워 겨우 드는 배추를 네 쪽으로 잘라 왁자지껄 침을 튀겨가며 속을 넣고 

밥을 싸와서 김치를 찢어 얹어 먹는 상상을 했다.  

프린트 된 책보다 실물을 보는 것,

노작활동이 정서에 좋을 것이라는 나름의 신념으로 12포기의 배추를 길쭉한 화분에 심었다. 

 

 

 

지렁이를 보자 징그럽다며 달아나던 녀석들은 장갑낀 손으로 만지더니 심지어는

맨손으로 만진다. 뒤로 물러나는 건 정작 나였다.

심는 와중에도 놀이가 반인 아이들은 지렁이가 반지처럼 꼬았다며 손가락에 끼기도 한다.  

 

 

 

요렇게 작은 아기 배추가 한아름 되는 배추를 기대하며 살살 심는다.

요즘 아이들은 늘 행동보다 말이 많다.

 

 

 

물조리개에 물을 담고 잘 자라라는 염원 또한 영양제마냥 듬뿍 섞어 물을 주었다.

 

 

그리고 햇빛을 가장 많이 받도록 건물 그림자를 피해 울타리쪽으로 붙여 놓았다. 

물 주는 당번을 정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늘 강조하지만 늘 기대에 못미치지만.- 관리하는 게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올 아이들이 있을 것 같아 원하는 아이들만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학교 뒤 후미진 곳으로 가서 배추를 들여다 본다.

자기가 돌봐줘야 할 생명체가 있다는 책임을 갖고 있겠지? 

어떤 때는 벌레가 배추 이파리를 먹었다가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화학 비료를 쓰지 않는 무공해를 지향하지만

보라, 우리보다 일주일 일찍 심은 오샘의 배추는 진초록색을 띄는데 우리의 배추들은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간다.오샘의 배추는 제법 속이 들기 시작하여 묶어주기까지 했는데... 

 

 

 

안되겠다싶어 집에서 비료를 가져다 뿌리 옆에 묻어 주었더니 녀석들은

링게를 맞은 양 기운을 차린다.

 

 

 

한 번 성장의 지체를 한 녀석들은 이제 이파리를 세우며 속이 들기 시작한다. 

 

 

 

들쑥날쑥 널뛰듯 날씨의 변덕이 잦기에

서로 이파리를 껴 안고 있으면 덜 추울 것 같아 속이 들기 시작하는 배추를 묶어 주기로 했다.  

 

 

 

 

물조리개만해야 할 배추...

 

 

 

 

 

토요일 재량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12월 2일에나 배추를 뽑았다.

그간 잦은 비로 배추 속은 많이 썩어 있었다.

 

 

 

배추 속을 씻어

 

 

밥, 쌈장, 햄 구워 온 것을 꺼내 놓는다.

너희들이 키운 배추란다.

햇빛, 바람, 그리고 물 주러 다닌 아이들, 그리고 밥 해주신 어머니와 농부들...에게 감사하며 먹어보자.

 

 

한 녀석이 큼직한 배추에 나름 이것저것 올려 선생님 드세요. 하고 내민다.

어떤 녀석은 배추가 고소하다며 급식시간에 고기만 나오면 더 받으러 나오던 녀석이

고기 없어도 맛있다며 배추에 쌈장만 찍어 먹는다.

나는 녀석들이 어린 아기 배추가 자라서 쌈장을 찍어먹기까지 많은 이들과 자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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