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농일지라고 해야 하나.
4월 초. 풀이 스멀스멀 올라오길래 밭을 한 번 갈아야 뭘 심을텐데 하면서도 어디 농기계 얘기할 데는 없고하여 가 볼때마다 대책이 안 섰다.
어느날 가 보니 우렁각시가 밥상을 차려 놓듯 밭이 짜잔 하고 하얗게 갈려진 거다. 작년에 파를 심었던 집에 전화를 했더니 자기가 갈아 놓았댄다. 땅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면서 반반 나눠서 농사를 하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흙을 받아서 집을 지어야 하니까 입구쪽에는 내가 쓰겠다는 말과 함께.
아저씨 얘기로는 멧돼지와 고라니 때문에 들깨와 파 밖에 심을 게 없다고 했다. 생각같아서는 고구마, 땅콩을 심으면 잘 될 그런 모래 땅인데 작년에 여주에 고구마 심었다가 멧돼지가 다 먹고 손가락 굵기만한 것만 캐 왔는데 올해도 그럴 수는 없어서 고구마는 심지 않기로 했다.
아저씨가 밭을 갈아 준 게 4월 18일이다. 밭을 갈아 줬으니 내가 갖고 있는 씨들 죄다 심었다. 도라지, 완두콩, 땅콩...
또 어느날 밭에 갔다가 윗집이 옥수수 심길래 10알만 달라고 해서 얻어다 20포기 정도 옥수수를 심었고, 들깨씨도 뿌려 놓았다.
단오때, 그러니까 6월 2일즈음 엄마가 왔다. 밭 구경 갔다가 단오 구경은 안 가고 밭 매고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되는 깨를 이식했다.
엄마랑 언니가 이틀동안 힘들게 심어 놓고 간 거라 아까워서 퇴근 후 짬짬이 김을 매 주었건만 풀 자라는 속도가 김매는 속도를 추월한다.
1/5만 매면 두차례 김을 매는데 하기사 시작했던 저 쪽은 또 잡초가 버글버글 올라와서 다시 매 줘야 하고.
며칠후 비가 온 뒤 가 봤더니 허걱, 이건 포기다.
명아주, 쇠비름이 깻잎을 덮고 있었다. 5키로를 차를 타고 갔기에 그냥 오는 법이 없었지만 풀 한 포기 뽑지 않고 포기하고 돌아왔다. 포기를 쉽게 할 수 있었던 또 하나 이유는 멧돼지 발자국이 크게 찍혀 있었던 것. 녀석은 내가 알기론 3번이나 다녀갔다. 자기가 침발라 놓은 옥수수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차 다녀가는 듯했다.
어제 영월 샛강네를 다녀오고, 그래도 밭이 궁금하여 오늘 가 봤다. 이제는 뱀이 나올 것 같아서 밭에 들어가지 못하겠다. 그래도 내년에 집을 지으면 심으려고 한 미니장미와 10개 정도 심은 땅콩이나마 거둬야겠다며 1시간여 풀을 뽑아주었다.
그리고 장덕리 언니네 갔다가 또다른 홍선생님네 재봉 봐주러 갔다가 집에 왔는데 장덕리 형부가 예초기로 풀 깎아 준다고 전화가 왔다. 지금 밭이라고. 하여 얼른 가지전을 부치고 열무김치를 담고, 주문진 동동주 두 병을 사서 밭으로 과속을 하여 갔다.
밭은 포기해도 괜찮은데 혹시 예초기 돌리다가 사고라도 날까 그게 더 걱정이 됐다.
형부는 예초기 특급 자격증이라도 있는 듯 한 두 그루 심어 놓은 들깨만 남겨 놓고 기술적으로 풀을 쓰러뜨렸다. 장덕리 언니는 늘 그 소지품 지갑만한 핸드백을 들고(언제 한 번 속을 보자고 해야겠다.)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면서 아주 잘한다며 연방 풍선을 뛰웠다. 10살 먹은 아이나 환갑이 지난 남자 어른이나 칭찬이라면 더 신이나서 붕붕 예초기를 돌린다.
길거리에서 막걸리잔을 비우고 비탈진 곳의 더벅머리 같던 억세도 몇 방에 날려 버리고 아직 뭘 심지 않은 밭고랑은 스님 머리마냥, 띄엄띄엄 들깨를 심은 내 밭은 스포츠 머리로 깎아놓고 윙윙거리던 예초기가 멈췄다.
촌에 살려면 꼭 남자가 있어야해. 에효.
다시 애정을 갖고 돌봐줘야 하는 옥수수와 들깨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