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기/텃밭

감자 이삭줍기

햇살가득한 2014. 7. 9. 22:14

  이삭이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아파트 너머에 1000여평 정도 감자밭이 있는데 잎이 푸르른 걸 보다가 갈색으로 변해가길래 조만간 캐겠구나 했었다.

3월에 정신없이 보내느라 감자 심을 생각을 못했기에 아파트 담장 밖 감자 캐기를 기다렸다. 어제 반을 캐서 담아 놨는데 오해받을까봐 안 가고 오늘 퇴근후에 보니 나머지 감자를 다 캤다. 거기다가 비가 와서 그런지 캔 것을 다 갈무리 해 갔고 없었다.

  김동인의 '감자'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이제는 내용도 다 잊어버리고 일제시대때 먹고 살기 힘들때 송충이를 잡아 주고 품삯을 받고 일은 안하고 남자와 히히덕 거리는데 품삯을 챙겨 받는 걸 보고는 주인공도 점점 쉽게 돈을 버는 길로 간다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감자는 식량을 위해서 바꿔오는 거였나?   

  일본인 대신 밭주인이 야단을 치면 어쩌지 하면서도 장화를 신고 비닐 봉지를 하나 들고 아파트 담장만 하나 넘으면 되는데 저 멀리고 ㅁ 자로 돌아서 밭으로 갔다.

  트렉터로 캤는지 기계 바퀴 자국이 나 있고 찍힌 것, 햇빛을 받아 파란 것, 작은 것들이 나뒹굴었다. 그 중에 흙에 묻힌 걸 캐 보면 의외로 크고 멀쩡한 것들도 나왔다.

  '하는 걸 보니 넌 엄마보다 더 극성일 거야.'하던 언니 말이 떠올랐다. 마트에 가면 돈 주고 사면 될 것을 흙을 묻혀가며 남의 밭에 가서 줍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왜?라고 반문을 해 보지만 흙을 묻히고 무거운 걸 들어야 하니 '재미로 한다?'는 아닌 것 같고. 그냥 팔자라고 해 두자. 모든 걸 돈으로 바꾸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

  오늘 캔 감자는 내일 해가 나면 파래져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다. 또 비가 와서 썩을 것이다. 밭에는 거름이야 되겠지만 멀쩡히 먹을 걸 버리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내가 정성들여 키우지는 않았지만. 

  그 무거운 걸 들고 다시 ㅁ 자로 돌아올 수가 없어서 울타리 밑에 디밀어 놓고는 담을 넘어 왔다.

  베란다에 신문을 깔고 죽 널어 놨다. 내 생각엔 10키로 좀 못될 듯한데 아마 몇 달 잘 먹을 것 같다. 내일 아침에 비가 안 오고 일찍 일어나면 해뜨기 전에 한 번 더 주워와야겠다.

  쪼개 진 거 도려내고 깎아서 감자전 부쳤다. 밭주인에게 감사들 드리며 넘 많이 먹었다. 아, 다이어트는 이렇게 무너지는 것인가? 하루만 봐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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