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위안부 수요집회를 다녀오다

햇살가득한 2019. 2. 14. 10:41

오래 전 매체를 통하여 위안부에 대하여 알게 됐다. 

아니 그보다 일제라는 존재는 고등학생 때 교실 벽에 붙어 있던 유관순 열사의 흑백 사진을 통해서 내게 각인되었다.

남들은 지각을 모면하느라 허둥대며 교실로 들어 왔는데

나는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가 나를 쳐다 보고 있는 유관순 사진을 보며 같은 나이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라면 그런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반추를 하였다.  

위안부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 뒤 위안부 소재의 영화들이 많이 나왔지만 사실 보지 않았다. 

같은 여자로서 차마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광주 '나눔의 집'을 지나다니며 마음도 쓰였다.  

자료를 찾아 읽기도 했고 그런 실상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잘 전달할까 고민도 했다. 

국사시간 어떤 일은 누구 왕 때 했다더라 하는 왕의 치적을 외는 공부가 다는 아니고,

일본사람을 만났는데 한국의 일제 식민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을 보고 영교육과정이 아닌 실상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전 '허스토리'를 보았다.

왜 일본 상대로 힘겨운 재판을 하느냐는 질문에 문정숙분 김희애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나만 잘 먹고 잘 산 게 너무 죄스러워서.'

시외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며 구 일본대사관 앞으로 갔다. 

소녀상을 바라 보는데 눈물이 난다. 



일제시대때는 길게 땋은 머리가 그 당시의 풍습이었다. 그러나  소녀상의 제작자는 '고향과의 단절'의 의미로 단발머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내복을 잔뜩 껴입고도 동동거리게 만드는 추위.

종아리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소녀상 어깨에 누군가 둘러 준 목도리는 그나마 덜 춥게 느껴진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은 모내기 하는 논에 밥 내주러 가다가 끌려갔다던 어느 위안부 할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소지품 조차 챙기지 못하고 끌려 가야 했던 맨발의 소녀들.

그 소녀의 맨발에 누군가 덧버선을 떠서 신겨 주었다. 

덧버선은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주먹은 결연하게 쥐고 있어서 일본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위안부 사실을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로까지 보여진다.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둘러서 있고 

여러 명이 강단에 올라가 발언을 하고 공연을 하며 외쳐대도 

소녀는 눈깜짝하지 않고 표정을 흐트리지 않은 채 앞만 응시하고 있다. 



1374차 수요 시위인데 일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으니 

시위를 위한 시위가 되어 가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소녀상을 보고 눈물이 배어 나는 내게 프랑스 기자라고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집회를 보고 느낌이 어떠냐고 질문을 했는데.

5분이라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면 조리있게 잘 해서 프랑스까지 일제의 만행을 잘 전달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내내 속상했다.   

지난해 결혼을 하면서 허례허식이 아닌 알찬 결혼식을 하겠다며 간략하게 했다. 

웨딩드레스는 한복집에서  빌리고 식장도 밥만 먹는 조건으로.

그래도 사진 한장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사진을 잘 찍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찍고 

친구가 정원에서 가꾸는 꽃을 꺾어 부케를 만들었다. 

신부화장은 한 다리 건너 지인에게 부탁해서 싸게 했다. 

이렇게 아낀 돈을 집회 활동에 쓰라고 기부를 하고 왔다.  

이제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고 보니 더는 어떻게 모을 것인가에 집중하지 않고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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