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모양만 흉내내는 시골살이

햇살가득한 2007. 9. 24. 12:44

종가집에 할머니에 또 산 그림자같은 아내에 눌려 사는 종손 강모의 일탈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궁금해 하며 밤늦게 책을 덮었다.  

동남향 집에 창문이 많은 마루에서 잠을 자는 나는 햇살이 눈을 찌르는 통에 잠에서 깨어난다.

아홉시다.

감자, 호박을 쪄서 쥬스와 함께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

음식 찌꺼기를 땅에 묻고

어제 정리한  카드 대금 영수증을 대추나무 밑에서 태운다.

배불리 먹지 않으니 속이 편해서 좋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는 배추밭(?)-배추밭이라고 써 놓고 보니 웃음이 나온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몇 걸음 걸으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닿을 수 있는- 에 풀을 좀 뽑아야겠다.

배추밭에는 비름이 잔뜩 나 있다.

바구니들 들고 뜯어 몇 번을 무쳐 먹었지만

이젠 열매를 달고 있어서 씨를 받게 될까봐 이참에서 뽑아 주어야겠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배추잎을 젖혀가며 배추 벌레를 잡고 풀도 뽑았다.

비름 줄기를 잘라서 데쳐먹었더니 끈질긴 녀석들은 다리 하나 없는 것쯤은 아무 상관없는 문어처럼

또 다른 줄기를 만들어내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은 날 심었는데 이렇게 작은 놈들이 있다.

거름도 주었을테고 비료도 주었을텐데... 
뭐가 부족했을까?

잠깐 아이들을 떠올려봤다.

한 교실에서 배추처럼 여기 심겨지고 저기 심겨진 아이들은

그 양분도 제각각 빨아먹어서

마음이 여물어 가는 놈도 있고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녀석도 있고...

며칠전에 비료를 한 번 더 주었었다.

이후에 비가 왔고 키작은 배추 이녀석은 그 양분을 얼마나 빨아 먹을 지 모르겠다.  

배추도 이리 다르게 자라는 것을.

 

지난 여름.

학교에 안 온 녀석이 있었다.

자습을 시켜놓고 친한 녀석이랑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녀석이 갈만한 PC방, 놀이터, 문방구...

녀석은 없었고 교감쌤이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더 돌았지만 헛수고였다.

4교시쯤에 녀석은 미모의 여경찰과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 앞에 섰다.

차근차근 얘기를 들어 주었지만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은 반도 안 했을 거란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직업상 맘에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학교에는 와야 하지 않니.'


여름이 지나고 녀석을 자연스럽게 불러 이야길 하고 싶었다.

그 때 왜 학교에 안 왔냐고. 물론 그의 엄마와 긴 시간 통화를 하면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받고 있는 폭력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싶었었다. 

소설가 이외수 부인은 그녀의 아들이 학교에 가려고 신발을 신다가 눈물을 떨구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자

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며

'그럼 학교를 가지 말고 이 돈을 다 쓰고 오너라. 단, 오늘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

며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고

스티븐스필버그 어머니도 아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면 좋아하는 영화관엘 보냈다고 하였다.

아이가 경찰과 학교에 온 그 때 난 두 어머니를 떠올리며

학교에 오기 싫음 안 와도 된단다. 한번쯤은 그럴 수도 있지.

니가 학교에 안 오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게 궁금하단다.

하고 말하고 싶었다. 

 

일본과 미국의 아이들은 사고가 다양한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사고가 한정돼 있다한다.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배추가 잘 자라는 것도 있고

또 양분을 줘도 안 자라는 것이 있듯

틀에서 벗어나 사고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햇빛이 따갑다.

아침 먹고 소화도 시킬겸 뽑기 시작한 풀을 저녁때 마저 뽑아야겠다.

그리고 햇빛을 가릴 밀집모자를 하나 사야겠다.

 

신발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윗집 할머니가 접시를 모시수건으로 덮어 송편을 가져 오셨다.

아껴 먹던 사과를 두 개 중에 하나를 드렸다.

그리고 만든 요구르트를 꿀을 타서 한 컵 드렸더니 깨끗이 비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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