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뒹글 모드에 들어간 나.
6시에 일어나 출근할 때와는 달리
햇살이 눈을 찔러 더 자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왔다.
모기, 벌, 나방등은 여름의 흔적을 주검으로 남기며 방안 여기 저기 뒹굴러 있는 걸 빗자루로 쓸어 내고
걸레질을 하였다.
촌에 사는 건 이래서 좋은 거지.
미처 먹지 못한 고등어를 마당 한켠에 삽으로 파고 묻어 두고
비닐은 비닐 봉지에 넣고 종이 쪼가리들은 대추나무 밑에서 불을 놓았다.
교회 담장따라 고들빼기가 자라는 걸 보고
누가 심었는지 아님 자연스레 난 건지.
그래서 마음껏 뽑지 못하고 한 끼 분량 몇 뿌리를 뽑아 데쳐서 무쳤다.
가구없는 휑한 마루에 밥상을 놓고
밥 한 그릇, 고들빼기 무친 것, 가지 무친 것이 전부인 밥을
수도승처럼 먹는다.
저녁 때 쯤에는 수세미를 사러 가야겠다.
길들여지지 않은 새 후라이팬이라 자꾸 눌러 붙는데 억센 청수세미가 있어야 때가 벗겨질 듯하다.
거기에 계란이라도 부쳐 먹어야지.
저녁때가 되어 지갑만을 달랑들고 운동화차림으로 마트엘 간다.
길가 밤나무밑에 알밤이 하나 떨어져 있다.
역시 두 다리로 돌아다녀야 뭔가를 얻을 수 있다니깐.
한 번도 걸어 간 적이 없는 마트지만 운동삼아 갓길 없는 길을 위험스레 걸어간다.
앰블런스 소리가 요란해서 뒤를 돌아 봤더니 뭐가 그리 급한지
레카차가 중앙선을 넘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사고가 났나보군'
알밤 속껍데기를 엄지손가락으로 밀어 벗겨내며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차가 비상등을 켜며 멈춰선다.
사고다.
시커먼 자가용이 항복하듯 배를 드러내며 하늘을 보고 있다.
어쩔까?
왕복 2차선이라 어떻게 돌아 갈 수도 없는데...
살면서 험한 것 보지 않는 게 행복이라고 여기는 나.
그래서 사고난 현장을 애써 피하며 사는데.
수세미는 어쩌나? 며칠째 사야겠다고 벼르고 있는 건데.
이런, 사람 생각은 뒷전이고 수세미 생각을 하다니...
한 손을 펴서 왼쪽 눈옆에 세워 시야가 퍼지는 걸 가리고 그 길을 지나가려고 하는데
배를 보인 차 밑으로 뭉뚱하니 뭔가가 널부러져 있다.
사람인가보다.
그렇겠지. 차가 저 모양인데 사람이 온전할리가...
사고현장을 보면 오늘밤 잠을 못 이룰 것 같아 발걸음을 돌린다.
그곳을 지나쳐 오는 차들은 끔찍함에 몸을 떨듯 부르르 달려 간다.
119 앰블런스가 지나간다.
나는 수세미를 언제나 사러 갈까 하면서
널부러진 사람이 술에 취해 잠깐 정신을 잃은듯 별일 없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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