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건성으로 먹고 갔더니 배가 고팠다.
3교시가 끝나고 서랍을 열다 보니 어제 태국 여행갔다 온 아이가 선물한 망고 말린 것이 한 봉지 있길래
책상 밑에서 가위로 뜯었다.
"선생님, 뭐예요?"
속 눈썹이 긴 민규가 책상 너머에서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응, 망고인데... 들켰구나."
나는 나지막하게 얘기 했더니 요녀석 금지구역인 내 책상을 돌아 옆으로 온다.
"선생님, 저두 주세요. 아침 안 먹었어요."
너는 왜 내 약한 맘을 공략하냐.
"딴 친구들한텐 말하지 마."
하면서 조금 잘라 줬더니 녀석은 오물거리며 자기 자리로 간다.
먹는 것에 민감한 2학년 녀석들.
"선생님, 민규 뭐 먹어요."
"껌 씹나 봐요."
"선생님이 주셨죠?"
일러 바치기에 정신 없다.
"응, 사실은 민규가 아침을 안 먹었대서..."
"나두 안 먹었는데요?"
"나두요."
이미 자기네들끼리 쿵짝을 벌이고 놀던 아이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몰려 온다.
"너희들도 먹을래?"
했더니 모두들
"네"
한다.
"이것 밖에 없으니 먹고 싶은 사람 한 줄로 서 봐."
아이들은 순식간에 긴 한 줄을 만든다.
"이렇게나 많이?"
우리반 애들 모두 다다. 동작이 늦은 유한이랑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 못하는 다해까지도...
몇 쪽밖에 안되는 망고를 서른 명에게 주자니 가위를 물티슈로 닦아서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씩 잘라 아이들이 두 손으로 내민 손바닥에 미안스럽게 올려 놓았다.
"전 좀 크게 잘라 주세요."
"지혜 것이 더 커요."
가위질을 더 크게 하길 바라며 아이들은 두 손을 내밀고 있다.
그 손 위에 작은 조각 하나를 놓아주면 군소리 없이 입에 넣고는 다음 아이를 위해 옆으로 비켜주었다.
못받을 아이들이 생길까봐 너무 작게 잘랐나보다. 좀 남는다.
"하나 더 먹고 싶은 사람?"
했더니 다시 한 줄이 금방 만들어 졌다.
다시 하나 하나 잘라 줬는데 오물거리며 먹는 아이들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어떤 아이는 먹다가 떨어뜨려서 아쉬워 하는 아이.
아껴 먹겠다고 깨알만큼씩 떼어 먹는 아이
누나 갖다 주겠다고 안 먹고 손에 들고 있는 아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 더 달라는 아이.
미안해 하면서 내일 한 봉지 더 갖고 오겠다는 선물 한 아이.
남은 한 개를 먹고 있는데 내 입 가까이에 손을 갖다 댄 아이가 입속의 것도 �어 주면 먹을 표정이다.
형제가 많은 우리는 엄마가 뭘 우물거리고 있으면
"엄마 뭐야?"
하면서 쳐다 보았다.
"엄마, 뱉어 줘."
하면 침과 섞이고 이에 부숴진 것을 내 주지 못하면
손가락을 넣어 빼낸 적도 있었다.
망고의 여운은 이미 4교시가 시작되었는데도 가시질 않았다.
이럴 때 입맛만 버렸다는 말처럼 아이들은 아쉬워 하면서 책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4교시가 끝나면 바로 점심시간이다.
아는 분이 택배를 부쳐 오면서 내용물이 다칠까봐 공간을 과자로 채워 보내온 것이 서랍에 있었다.
과자를 먹으면 밥을 안 먹을 것 같아 망설이다가 과자를 풀기로 했다.
몇 봉 되지 않은 걸로 서른 명의 것을 나눠야 한다. 하기사 망고 한 봉지로 서른 명에게 돌렸으니.
국어 책을 모둠별로 한 권씩 갖고 나오래서는 받치고 그 위에 흰 복사지를 한 장씩 깔았다.
그리고는 과자를 5모둠으로 6명씩 먹을 수 있도록 담았다. 비스켓은 반으로 나눠야 하는 것도 있었다.
모둠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모두 잘 먹겠습니다를 외치고는 맛있게 먹는다.
알림장을 쓰고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물컵에 물을 떠서 밥 먹고 있는 내 옆에 슬쩍 갖다 놓는다.
과자를 나눠 준 오늘도 그랬다.
이런 아이들이 점점 늘어 간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떠 온 물을 마시라고 먼저 떠 온 아이 물컵과 바꿔치기도 하고 또 그 컵에 물을 섞어 놓기도 한다.
내가 밥을 다 먹을 때 까지 나가지 않고 기다렸다가 내 가방마저 받아 들고는 우루루 나를 따른다.
어미닭과 병아리들 같다.
아이들과 식당 뒷문으로 해서 주차장을 거쳐서 여러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곳을 한 바퀴 돌고는 교실로 올라 가는데
말을 전혀 안 하는 다해, 의기소침해서 스스로 문을 닫고 지내는 은수, 공부에 뒤쳐지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유선이와 식물들을 핑계로 친해지기 위한 일종의 전략인 셈이었다.
아이들은 내 손을 잡고 싶어서 팔뚝을 슬쩍슬쩍 부딪친다.
아직 손을 잡기에는 어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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