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봄날이 간다

햇살가득한 2011. 6. 6. 22:34

현충일을 낀 연휴다.

좁은 공간에서 열심히 일했으니 한 달에 두 번 있는 연휴만큼은 여행을 가야한다는 보상심리가 있었는데 이제 여행을 자제하기로 했다. 

여기 저기 나다니는 것처럼 내 인생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조용하게 책을 가까이 하면서 밖으로 향하는 기운을 끌어 들이기로 했다.   

반나절 책을 읽다가 규모는 텃밭인데 먼 거리에 있는 텃밭의 고구마가 잘 살았는지도 궁금했다. 잡초를 뽑아줘 시원한 바람이 도라지 사이로 불 것 같은 그 밭에 또다시 잡초가 잠입하고 있는지도 마음이 쓰였고 그래서 남한산성 산책을 가려다 텃밭의 숲길로 바꿨다. 

취를 뜯다가 더덕을 발견했다.

더덕은 내게 산삼마냥 흥분을 가져다 준다.

 

5년 이상은 족히 되었음직하다. 장갑낀 손으로 살살 파내니 이내 뿌리가 드러난다. 위에서 취나물을 뜯던 하품리 아저씨는 그 향이 여기까지 퍼져 오냐며 비탈진 산에서 큰 목소리를 내었다. 더덕향은 정말 멀리간다.

몇 년 전에 산삼을 캤는데 엄마 준다고 싸 뒀다가 두 뿌리를 놓친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엄마 생각이 났다. 하얀 진이 나오는 더덕을 먹으면 힘이 날 듯 하다.

 

제법 몇 뿌리 캤다. 녀석들은 일가를 이루고 있었는데 아직 어린 녀석들은 다시 되묻어 주었다. 올 가을에 종 모양의 꽃을 달았다가 씨앗을 야무지게 여물게 할 것이다. 그리고는 또 더덕 일가를 이루겠지. 

 

 

더덕은 생으로 먹는 게 효과가 더 있을까?

한 뿌리 까서 먹었는데 오랫동안 목이 뭐가 낀 것 마냥 거슬린다. 생더덕은 도라지청을 먹었을 때의 그 느낌과 비슷하다. 쿵쿵 찧어서 고추장에  매실효소와 들기름을 넣고 구웠는데 날 것처럼 목이 거슬리지는 않았다.  

 

 

 

취나물은 여름이 시작돼서 그런지 쓴맛이 났다.

일부는 생으로 엮어서 말리고 일부는 데쳐서 냉동실에 넣었다. 또 데친 일부를 쌈 싸 먹으려 했더니 쓴 맛때문에 먹을 수 없었다. 저녁때 물을 좀 더 붓고 끓이다가 들기름, 간장, 다래효소와 마늘을 넣고 볶았더니 쓴맛이 덜하며 부드러워졌다.   

 

질경이도 뜯어 왔다. 촌에서는 집을 나서면 지천이 먹을 거리다.

그러나 다듬고 씻고 데치고 갈무리 하면서 반나절을 보내고는 매일 이렇게 하다간 오로지 먹는 것에 시간을 다 쓰겠다 싶으니 한편으로는 촌에 살지 않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질경이는 데친 뒤 냉동실에 넣어두고 저녁때 일부는 볶아 봤는데 역시 쓴 맛이 났다. 엄마는 물에 우려야 된다고 했다.

 

쑥도 한 봉지 뜯어 왔다. 내가 도라지 밭을 매는 사이에 날개님이 뜯었는데 나를 반 덜어 준다. 작년에 쑥효소를 담아 보니 즙이 아주 조금 밖에 나오지 않아서 내키지는 않는데 그래도 조금 담아봐야겠다.  

 

 

황설탕을 뿌려 버무려 놓은 뒤 뒤적거리니 숨이 죽었다.

 

 

쑥을 꼭꼭 눌러 담으니 항아리 반도 안 찬다. 조만간 한 봉지 더 뜯어다 항아리를 채워야겠다. 

저온 저장고가 없으니 비닐로 씌워놓으면 온도가 더 올라갈 것 같아 쓰다남은 한지를 씌웠다. 고무줄은 개미가 싫어해서 고무줄을 넘지는 않겠지만 삭아 닳기전에 실로 묶어줘야겠다. 그리고 촌에 살면 꼭 토굴로 저온 저장고를 만들어 각종 효소를 담아 발효시켜야겠다. 오늘도 친구가 저온 발효시킨 산야초, 오미자에 상온이라 상할 것 같아 설탕을 잔뜩 넣어 내가 발효한 쑥 효소를 섞어 한 잔 마셨다.

 

 

옥상에 실같은 영양 부추와 상추가 자라는 걸 보고는 삼겹살 생각이 났다.

마트에 가서 얇은 불고기용으로 반근을 사다가 고추장과 다래 효소를 넣고 양념을 했다.

고추장, 된장, 매실효소, 땅콩을 넣어 쌈장을 만들었다.

10여년전 꽃돌을 남자 친구가 사 줬는데 친구는 간 데 없고 꽃돌이 장식용이 아닌 마늘 찧는 용으로 쓰여서 사정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꽃돌의 운명을 생각해 본다.   

 

 

 

6월의 첫째주 연휴도 끝나가고 강한 햇빛을 받고 자란 취나물에선 진한 쓴맛이 여름이라고 알려 준다. 여리고 설레이게 다가왔던 봄날은 그렇게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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