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볼트를 조여라

햇살가득한 2011. 7. 11. 22:44

 

  알람이 울리면 끄면서 계산을 한다. 엊저녁에 머리를 감았으니 안 감아도 되니 10분 절약, 밥은 해 놓은 게 있으니 먹기만 하면 되고 10분 절약.. 20분을 더 자도 되겠군. 이러거나 아니면 알람을 바로 끄고 일어나 행동개시를 하거나.

  그러나 오늘은 이불속에서 계산을 하기도 전에 떠오른 생각에 바로 자리를 걷고 일어났다. 주말에 하려고 가져온 일을 프로그램상 문제가 생겨서 못하고 남들이 접속하기 전에 일찍 출근해서 해야한다.   

  아뿔싸, 고장난 와이퍼! 택시를 탈까 하다가 택시비가 아까워서  왼손은 핸들을, 머리는 조수석에 두고 , 엉덩이는 반쯤 떠서 엉거주춤 위험한 운전으로 출근을 했다. 

  하루 일과는 늘 그렇고 저렇고 또 이런 일들.  

  퇴근시간. 직장 근처의 카센타를 갈까? 거긴 단골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내키지 않는 곳이다. 한 번 갈 때마다 이거 바꿔라, 저거 바꿔라. 늘 속고만 사는 것같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곳. 

  빗줄기가 그다지 세차지 않아서 집 가까운 카센타까지 또 엉거주춤 운전을 했다.  

  엔진오일 갈고 와이퍼를 봐달라고 했다. 밖에 나갔던 직원은 와이퍼가 떨어져서 새로 받아 와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린댄다.  

  차를 맡겨 놓고 집으로 오면서 마트에 들러 옻닭 재료들을 사 왔다. 노란 옻물이 우러난 뜨거운 국물을 먹으면 몸살 감기쯤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옻나무를 물에 씻어 불리는 사이에 은행을 까고 인삼을 씻고 쌀과 대추를 씻어 불리고 같이 곁들여 먹을 오이도 썰고...

 

 

 

  다 고쳤다고 전화가 왔다. 값부터 물었다. 생각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었다. 엔진오일보다 당장 중요한 게 와이퍼이거늘. 부속이 없다면 지금 시간에 어디를 또 비를 맞으며 끌고 가야 할까 하면서 장화를 신고 철벙철벙 걸으며 차를 찾으러 갔더니 엔진오일값만 받는다.

  "수리비는요?"   

했더니 기사는

  "볼트가 풀려 있어서 그것만 조였어요."

하는 거다. 

뜨악, 볼트가 풀려 있다! 그런 단순한 일에 빗길 위험한 운전을 하고 있었던, 또 수리비에 지레 겁먹고 있었던 나. 차에 있던 우유를 제 나눠주고 부드럽게 말을 듣는 와이퍼를 부려 먹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내리막길에서 양보까지 하면서.  

  저녁상으로 준비하고 있는 옻닭은 여름 몸살이나 앓고 있는 내 몸을, 흩어져가는 내 정신들을  볼트처럼 꽁꽁 조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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