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내가 콘크리트가 된 날

햇살가득한 2011. 12. 15. 20:02

 

기계랑은 별로 친하고 싶지 않다.

아니 친해지고 싶었지만 기계는 항상 자기를 이용한 댓가를 치루라고 했다.

여기 저기 깨지고 베이고 꿰매고...

그래도 드릴 하나는 갖고 싶었다.

싱크대 나사를 고개를 70도 가량 꺾고 밑에서 위로 쳐다보며 십자 드라이버로 조일때,

솟대에 연필 굵기만한 나무를 박야야 할 때

이럴 때 전동 드라이버를 드르륵 돌려 주면 얼마나 좋으냐 말이다.

물론 연장에 대한 예의만 차리지 않는다면.

 

사람이 남의 입장에서 본 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지.

난 그동안 내가 드릴을 든 역할만 할 줄 알았다.

드릴이나 드라이버로 이것 저것 구멍을 뚫고 조이는 역할만 했지 그 밑에서 당하는 자의 생각은 추호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금니를 10대에 2대를 뺀 게 있었다. 

10년 주기로 보철을 2번을 했는데 요 며칠 이가 아픈 것이 안되겠다싶어 치과엘 갔다. 

아프리카나 GNP가 낮은 나라에 가면 내 금이빨 때문에 테러를 당할지도 모르겠는걸.

환하게 웃으면 그대로 드러나는 번쩍거리는 금니가 이제 제 수명을 다 한 것이다. 

이참에 나도 인플란트라는 것을 해 보자. 

윙하고 기계가 돌아가며 엑스레이를 찍고 방을 옮겨 의사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큰 모니터 화면에는 해골처럼 드러나는 이빨에 여기저기 충치로 땜질한 흔적이 하얗게 나타난다.

의사는 이어 나를 눕혀 놓고 이야기를 한다.

환자는 앉고 의사가 누워서 진료를 한다면 훨씬 겁을 덜 먹을 텐데. 

눕혀 놓고 들이대는 온갖 꼬챙이와 깎여지는 그 금속성의 소리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든다. 

의사는 내 잇몸에 여러 대의 주사 바늘을 찔렀다.

그리고 금니를 떼어내는 것이다.

건축 공사 현장을 지나갈 때 톱니가 보이지 않게 빨리 돌아가는 쇠톱이 돌멩이를 쪼갤 때의 그 소리.

거기다가 단단하게 박힌 못을 빼듯 의사과 간호사 합작으로 내 금니를 뽑느라 애를 쓴다.

공사장의 인부들 같다.

간호사는 진노랑 소독약으로 입술과 코까지 둥그렇게 발라 놓고는 나를 다른 방으로 데려 간다. 

개방돼 있던 다른 방과는 달리 크기도 작은 것이 밀폐 돼 있다.

경찰서 지하 방에 끌려 온 기분이다. 

"바른대로 말하랏 말야." 

온갖 공포가 엄습한다.

그들은 일단 나를 눕혀 놓더니 초록색 매트로 내 동그란 입만 내 놓고는 덮어 버렸다. 

어떤 연장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중에 확실한 건 드릴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라는 것.

처음엔 내가 하얀 살결 고운 나무가 된 줄 알았다. 

내 입을 벌려 놓고 그들의 드릴은 멈추지 않았다.

살결 고운 나무 정도로는 안 되는가보다.

그 때 떠오르는 건 회색빛 단단한 콘크리트 구멍을 뚫는 공사현장의 어떤 사람.

나는 저항도 못하고 고스란히 누워서 콘크리트가 되어야 했다.  

"잇몸 뼈가 작아서 치골 이식을 해야겠는데요."

레미콘 차가 콘크리트를 붓듯 뼈 이식을 하고는 그 위에 철심을 하나 박았다.

철심도 가는 것 보다는 굵은 게 좋다고 했다. 

드디어 드릴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바느질 할 때의 그 몸동작이 눈감은 내게도 전해져 왔다.

침을 뱉으며 보니 검정색 나일론 끈이 5cm 만큼 버려져 있었다.

 

함부로 드릴로 콘크리트나 나무를 뚫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