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볶고

소박한 밥상

햇살가득한 2011. 12. 11. 22:40

 

이상한 일이지? 

10 때는 햄버거, 김밥, 떡볶이 이런 게 맛있었고

2, 30대 때는 월급 타서 양식집 다니고

40대 지금은 한정식이나 집에서 먹는 소박한 음식이 좋으니 말이다.

 

나는 식재료 만큼은 손이 커서 큰 박스 단위로 산다.  

국물용 큰 멸치를 사서 일처럼 신문지를 펴 놓고 대가리, 몸통, 똥으로 분리한다. 

똥은 화분에 거름으로 주면 식물들이 좋아라며 쑥쑥 자란다.

몸통은 볶아서 된장국 끓일 때 같이 넣는데

멸치를 볶아서 쓰면 비린 맛이 덜하고 구수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대가리는 볶아서 멸치 육수를 만들어 두고 국 끓일 때 쓴다.

육수로 우리고난 멸치 대가리는 닭들한테 주면 좋을텐데하면서 화분 거름으로 보낸다.  

난, 역시 살림을 잘해. 알뜰하게 뭐 버리는 게 없이 자연으로 다 돌려 보내잖아.

이런 칭찬을 스스로에게 하며 옥상 화분이 아닌 내 텃밭에 이런걸 던져 두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내년엔 꼭 촌으로 가야지 하는 마음을 다지곤 한다. 

또 멸치 대가리를 끓이면서나는 그 역한 냄새에 집을 지으면 꼭 보조 주방을 하나 만들리라 생각한다.

 

 

 

오늘은 멸치 육수를 넣고 배추 된장국을 끓이기로 했다.

 

 

 

멸치 대가리의 그 역한 냄새는 된장을 한 숟갈을  풀었더니 구수한 냄새에 눌려 버렸다.  

촌에 가면 된장도 직접 담가 먹어야지. 촌 생활이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배추는 화분에서 길러서 크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아주 고소하다. 

찧은지 얼마 안 된 찹쌀 현미에 까만콩, 수수, 여름에 삶아서 알을 따 냉동해 둔 옥수수도 같이 넣으니 구수하고 씹히는 맛도 좋은 영양밥이 되었다.  

쌈장은 엄마가 담은 된장, 고추장을 섞고 매실액, 땅콩 간 것 등을 넣으니 고소하고 짜지 않아서 좋다.  

 

 

그럼 먹어 볼까 했더니 무기질이 부족한 듯.

재운 김을 몇 장 놓았다.

김을 재워 먹는 건 번거롭지만 솔잎을 꺾어다 냉동실에 넣어 두고 솔(붓)처럼 쓴다.     

탄수화물, 비타민, 무기질, 단백질, 칼슘.. 

가짓수는 많지 않아도 영양이 골고루 들어간 소박한 밥상. 

밥이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야? 

빈 밥그릇에 숟갈을 얼른 내려 놓지 못하다가 '참아야지'하면서 내려 놓는다.

밥도 적당히, 욕심도 적당히, 더불어 속을 편안하게 하는 된장은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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